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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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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천하의 대세를 말하자면 나뉜 지 오래면 합쳐지고 합친 지 오래되면 분열한다(話說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삼국지 첫머리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리 왔다가 또 저리 가곤 하는 게 세상 이치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중국의 석학 지셴린(季羨林) 선생은 30년은 동쪽에서, 30년은 서쪽에서 동방문화와 서방문화가 교차해 번성한다며 이를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라고 말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요, 세강필약(世强必弱)이라고 했던가. 사물의 흐름이 어느 한 극(極)에 달하면 반전이 있게 마련이요, 세력 또한 강한 것도 약해지는 때가 있다. 모든 게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태어남(生)이 있으면 스러짐(死)이 있고, 시작(始)이 있으면 끝(終)이 있다. 크고 작음(大小), 가볍고 무거움(輕重), 앞뒤(前後)와 좌우(左右)의 이치 또한 매한가지다.

 이런 극단에서 벗어나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은 무얼까. 바로 가운데(中)에 위치함이다. 중(中)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표시한 것이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씨족을 표시하기 위해 깃발에 상징 부호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씨족에 중대한 일이 생기면 넓은 터에 먼저 깃발(中)을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해 사람을 모았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몰려들면 그들 사이에 깃발이 꽂힌 곳이 바로 중심(中心)이자 중앙(中央)이 된다. ‘가운데’라는 뜻이 나온 배경이다.

 중용(中庸)은 그래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떳떳해 변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가장 적절한 것(中)의 아래로 마음(心)이 오면 ‘공평무사하게 온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란 뜻의 충(忠)이 된다. 또 중(中)의 왼쪽에 사람(人)이 서면 여러 형제 중의 가운데라는 중(仲)의 의미를 갖는다.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은 중재(仲裁), 중간에서 공평무사하게 일을 주선하거나 흥정하는 것은 중개(仲介)다.

 단군 이래 우리가 주인이 돼 치르는 최대 국제회의라는 G20 정상회의가 다음 주로 성큼 다가섰다. 회의의 성패(成敗)는 주인이 얼마나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중(中)의 정신으로 중재와 중개를 하느냐일 것이다. 한국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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