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천하대세를 읽는 중국의 눈이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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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세상을 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이다. 전자가 ‘새의 눈(bird’s-eye view)’이라면 후자는 ‘벌레의 눈(worm’s-eye view)’이다. 그림으로 옮기면 전자는 조감도(鳥瞰圖)가 되고, 후자는 앙시도(仰視圖)가 된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조감도를 중시해 왔다. 천하대세를 보고, 대국(大局)을 읽는 전략적 사고를 귀히 여겨 왔다. 하지만 요즘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잠깐의 성취에 도취돼 판단력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렇다. 중국은 지난달 29일 오전 하노이에서 열린 양국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일본이 언론에 잘못 발표했다는 이유로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중·일 정상회담을 보이콧했다. ‘사실과 다르게 유포’ ‘입장을 왜곡’ ‘일본 측 소행’ ‘분위기 훼손’ 등 외교적 용어로 보기 힘든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에 관한 한 일절 양보나 타협이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소탐대실(小貪大失)로 보인다. 그럴수록 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동북아는 물론이고, 중국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아시아에 대한 ‘개입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서로 다른 루트로 아시아를 동시에 순방하는 이례적인 외교 이벤트까지 연출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순방길에 들른 하와이에서 “미국은 미래에도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대(對)아시아 전방위 외교를 천명했다. 말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시아를 중국에 순순히 내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터에 해결이 어려운 영토주권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는 것은 미·일의 결속 강화와 미국의 개입을 자초하는 자충수일 뿐이다.

 대중(對中) 견제를 위해 아시아로 회귀(回歸)하는 미국에 대응하는 중국의 가장 효과적인 책략은 아시아 주변국들과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한·중·일 3국간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은 미국의 분리·지배 의도를 무산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중·일 갈등은 한·중·일 공동체가 얼마나 요원하고, 연약한 꿈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내년 중 한국에 한·중·일 협력 사무국을 설치키로 했다지만 중·일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도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자애로운 대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크게 봤을 때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중국은 비상(飛翔)하는 ‘대붕(大鵬)의 눈’을 되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