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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정보의 홍수 시대 … 인용법 교육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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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세계 제일의 갑부 빌 게이츠는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자기 아버지의 모교인 미국의 어느 법대에 건물 신축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희사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빌 게이츠가 학교에 제시한 조건은 단 한 가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학교 건물명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게이츠 변호사는 아들 하나 잘 둔 덕에 건물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 학교는 건물 이름을 바꾸면서도 법대에 부속된 도서관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마리안 굴드 갈라거 도서관'. 도서관명은 다름아닌 이 학교에서 37년간 봉직한 도서관 사서의 이름이었다. 아무리 장기 근무를 하였고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였다 해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도로와 항만, 통신, 전력 등 시설이 잘 갖춰져있어야 한다. 그러면 학문발전의 인프라는 무엇일까? 필자는 감히 도서관 또는 문헌정보학이라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쓸모없는 시대가 이미 왔거나 곧 올 것이다. 학문발전의 인프라는 필요한 정보를 수요자에게 정확하고 빠르게 공급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확한 정보의 제공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많은 정보 중에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는 그 정보의 신빙성과 품질이 담보되어야 한다. 출판물 또는 인터넷상의 그 많은 문헌정보를 정확히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검증이 필요한데, 그 검증을 담보하는 것이 인용법이다.

어떤 경우는 인용규칙을 지키지 않으니 인용법이 왜 통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야말로 표절이 난무하고 있다. 질서는 지키면 아름답다고 했더니, 누구는 안 지키면 편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도로가 넓게 잘 닦여 있을 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곧 누가 원작자인지, 누가 표절자인지 모르는 무법천지가 되면 어느 누구도 창작을 위한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학문수준과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각종 응응과학.실용세계의 질 저하가 초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저작권의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나 학술분야의 주무 부서인 교육인적자원부가 나서서 하기 어렵다면 대학 중 어느 한 대학이 이 일에 나서면 어떨까? 하버드 법대의 블루북이라 하는 인용법에 관한 책은 이미 17판째 나와서 미국의 전 대학이 그 인용법을 빌려쓰고 있다. 전국의 각 대학이 로스쿨을 인가받기 위해 건물을 짓고, 교수를 충원하는 등 난리다. 전게서.상게서 등이 난립하고 있는 우리의 인용법을 바로잡아 표절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인용규칙을 차분히 마련하는 대학에 로스쿨를 인가해주면 어떨까? 기본이 바로서지 않으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오지 않는다.

남형두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