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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슬픈 탄원서 두 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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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A씨의 중학생 딸이 법원에 보낸 진술서. [연합뉴스]

“본인은 김민수(가명)의 친어머니입니다. 며느리가 법적으로 아들 김민수와 이혼이 되도록 판사님 도와주십시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이주영 판사는 “1년 가까이 연락이 두절된 남편과 이혼하게 해 달라”며 A씨가 낸 이혼청구 소송과 관련해 한 장의 진술서를 받았다. A씨의 시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A씨는 가장이다. 시어머니와 4남매까지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2008년 5월 남편 김씨가 “생활비를 벌러 지방으로 가겠다”며 집을 나가면서부터다. A씨는 한때 파출부를 했었다. 요즘은 오전에는 마트,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야간 근무를 하면 돈을 좀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11시간 넘게 일하고 받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여섯 식구가 반지하방에서 겨우 살아간다.

 집을 나가고 처음 몇 달은 남편도 전화를 걸어왔다.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가끔 아이들 계좌로 용돈을 부쳐주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날이 늘어갔다. 지난해 말부터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친척을 동원해 몇 차례나 지방을 찾아봤지만 실패했다.

 생활고에 지친 A씨에게 직장 동료가 “이혼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이혼은 내키지 않았다. A씨는 몇 번을 망설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그의 마음을 돌렸다. 맏딸이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당장 학비가 걱정이다. 4남매가 차례로 진학을 하면 대책이 안 선다. A씨는 결국 이혼청구 소송을 냈다.

 A씨가 일을 나가면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봤다. A씨는 이혼을 하더라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 생각이다. 이혼 소송을 내면서도 시어머니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오히려 “내 아들과 며느리를 이혼시켜 달라”며 진술서를 써줬다.

 “아들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참으로 참담한 심경입니다. 아들도 없이 며느리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손자·손녀들 4명이 살아가는데 너무나 막막합니다. 이혼이 되어야 정부에서 보조금이라도 나온다고 하니 판사님 꼭 도와주시길 간청드립니다.”(시어머니 진술서)

 중3 맏딸도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했다. A4 용지 세 장 분량이었다.

 “저희 가족이 많다 보니 엄마가 무리하게 일해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와 저희 4남매가 생활하기에는 엄마의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말 이혼이라는 말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하게 되면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정부에서 학비를 지원해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게, 막내 동생 유치원 보낼 수 있게…판사님! 제발 도와주세요.”(맏딸 진술서)

 재판부에서도 김씨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현재 재판은 거주지를 알 수 없을 때 법원 게시판 등에 일정 기간 진행 내용을 게재하는 공시송달(公示送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선고는 다음 달 1일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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