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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형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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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흔히 교육은 투자라고 한다. 경제논리로 따지면 투자란 미래의 수익을 노리고 하는 것이다. 장차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면 안 하는 게 맞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 이유도 불확실성이었다.

교육 투자도 불확실성이 크다. 지금 아이를 열심히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킨다고 장차 일류대에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아이의 능력은 부모 눈엔 잘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돈을 들이다 일류대에 못 가면 투자수익률은 극히 낮아지는 셈이다.

기업이라면 이런 투자는 꺼릴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다르다. 오히려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투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교육 수요는 어떤 입시제도하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교육을 투자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가족경제학'의 전문가인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시그노가 대표적이다. 그는 교육을 투자가 아닌 소비로 간주한다. 이를 전제로 자녀의 교육과 관련한 '질.양 모델'을 만들었다. 질이란 아이의 교육수준, 양은 자녀의 수를 가리킨다. 부모는 제한된 예산 내에서 자신이 가장 만족할 수 있도록 자녀의 수와 질의 조합을 정한다고 한다. 적게 낳아 많은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교육은 덜 시키더라도 많이 낳아 기르려는 부모도 있다.

공부가 아이의 장래를 좌우할 경우 부모는 양보다 질을 택하게 된다. 적게 낳아 소비재원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반면 가치기준이 다양해져 공부 외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으면 교육소비가 줄어 자녀를 더 낳을 여유가 생긴다는 논리다.

이 모델이 시사하는 것은 교육이 부모의 과시형 소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질 높은(공부 잘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큰 자랑거리다. 그런데 이게 지나치면 교육은 아이가 아닌 부모를 위한 소비가 된다. 아이가 일류대에 들어가도록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은 부모의 과시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소비라는 얘기다. 우리 학부모들의 과열경쟁을 보면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교육을 경제처럼 다루지 못하는 모양이다. 꼬이고 꼬인 우리의 교육문제도 그런 소비패턴에 기인하는 건 아닐까.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