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10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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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영문을 모르던 나와는 달리 성진이는 그게 무슨 소린지 대뜸 알아듣는 눈치였다.

- 이쁜 애들 있어요?

- 그러엄, 다 첨 나온 애들이여.

성진이가 나를 힐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 암만해두 널 졸업시켜야겠다.

그 말에 나는 퍼뜩 제 정신이 들었다. 택이가 늘 하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딱지를 떼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성진이가 자기 짐을 들면서 앞장을 섰고 눈치를 챈 펨프 여인이 얼른 따라붙었다.

- 긴밤 잘거유?

- 아뇨 잠깐 … 야, 따라와.

서울역 광장에서 그대로 한길을 건너 국제회관 한식당 있는 길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비좁은 골목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전후에 번성한 사창가는 종로 삼가와 도동 양동 그리고 청량리 용산 영등포 역전에 있었다. 그런 사정은 전국의 도시마다 비슷했다. 여인은 블록으로 아무렇게나 지은 것같은 이층 건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가 이층에 들어서자 입구에 섰던 포주인 듯한 남자가 우리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성진이의 옆에 바짝 붙어 서있었다. 가운데 복도가 있고 양쪽으로 방문이 줄지어 있었다. 속옷 바람의 여자들이 샌들을 직직 끌면서 복도를 오고 갔다. 주인이 내게 어느 방을 지정해 주었고 성진이가 한참이나 나와 함께 앉아 있다가 나갔다. 방에는 붉은 캐시밀론 이불 한 채, 때에 절은 베개 둘, 그리고 베니어판에 벽지를 바른 벽, 위로 작은 구멍이 뚫렸고 그 가운데 삼십촉짜리 전구가 매달렸다. 옆방과 이쪽 방을 동시에 밝히는 셈이었다. 문 바로 위쪽에 선반이 있고 그 위에 내 신발을 얹어 두었다. 문 맞은편에 작은 창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 건물은 운이 좋은 편이라 앞을 막아선 건물이 없었다. 언덕 아래로 아래편 판자집의 지붕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거리의 불빛들이 내려다 보였다.

문이 열리면서 여자가 들어섰다. 나는 얼른 자세를 고치며 벽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여자는 남자처럼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격이었고 짧은 머리에 그 잊지 못할 칼자죽 같은 상처가 뺨 위에 깊숙이 파여 있었다. 그녀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다.

- 뭐야, 첨 왔어?

- 네에.

여자가 풋 하며 웃더니 캐시밀론 이불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녀가 속치마를 위로 휙 젖히는데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

- 얼른 해, 시간없어.

내가 그대로 쪼그려 앉아 있으니까 그녀가 내게 달려들더니 목을 껴안고 당겼다.

- 일루 와, 내가 가르쳐 주께.

- 자, 잠깐만요. 불 좀 끄구요.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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