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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수애 … 잊어주세요, 청순가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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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단아하다는 말, 여성들이 듣고 싶어하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가 아닐까. 수애(30)는 데뷔 후 줄곧 ‘단아한 미인’이라는 말을 듣는 행운을 누려왔다. 단아하다는 말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미모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단단한 속내를 갖췄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형용사다. 수애에겐 그런 가슴 속 불꽃이 보인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03년 MBC 드라마 ‘러브레터’에서 지진희·조현재 두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은하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만 해도 큰 눈망울이 풍기는 분위기는 ‘청순가련형’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애는 차근차근 성장했다. ‘사랑이 뭔지 아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머나먼 베트남까지 남편을 찾아간 위문가수(‘님은 먼 곳에’), 호위 무사와 사랑에 빠지는 조선의 국모(‘불꽃처럼 나비처럼’)를 거치는 동안 그는 성숙했고, 성숙한 만큼 다부진 속내를 배역 위에 포개놓았다.

최근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스릴러 ‘심야의 FM’(감독 김상만)은 수애가 단아함에서 한발 더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쇄살인범이 벌이는 인질극에 휘말린 라디오 DJ 역이다. 아이를 인질로 잡힌 엄마의 절박함은 수애의 강단 있는 연기에 힘입어 십분 살아난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지녀온 불씨에 이제 제대로 점화가 시작된 것이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가 작품 홍보에 신들린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배우는 작품 홍보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프로 의식이 철저하든가(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 않은 경우다), 아니면 ‘이번 작품은 내 경력의 터닝포인트’라는 확신이 들었든가(이럴 때 배우는 없는 일정까지 만들어달라고 자청한다). 수애는 신작 ‘심야의 FM’을 그야말로 ‘불꽃홍보’했다. 개봉 전까지 하루 평균 대여섯 건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방송 프로 출연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홍보담당자는 인터뷰 시간을 40분밖에 내지 못한다며 미안해했다. “수애씨 스케줄표를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에요”라면서. 수애를 서울 인사동 프레이저 스위츠 서울에서 만난 13일도 그랬다. 전날 빼곡한 인터뷰 일정과 심야 라디오 프로 출연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한 후 다시 아침부터 강행군에 들어간 참이었다. 식사도 인터뷰 중간 도시락을 사다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외유내강형, 언제나 그것만 보여줄 순 없죠

수애는 어떤 쪽이었을까. 프로페셔널함의 발로일까, 아니면 ‘이거다’ 싶은 작품을 만난 걸까. ‘님은 먼 곳에’의 순이나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명성황후는 영화가 기대보다 부진한 성적을 보였기에 수애가 그냥저냥 묻혀버린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예쁘게 나올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여배우들이 비교적 선호하지 않는 장르인 스릴러를 고른 이유부터 물었다. “아나운서 고선영이라는 여자가 참 멋있었어요. 당당하고 딱 부러지고. 딱 한 가지가 걸렸죠. 싱글맘이라는 점. 배우 수애가 미혼이라는 걸 관객들이 다 아는데 과연 몰입이 될까? 김상만 감독님이 명쾌하게 해결해 줬죠. ‘수애씨 자신을 믿고 시나리오를 믿으세요. 영화에 한 번 빠져들면 그런 거 아무도 생각 안 할 걸요.’(웃음) 그때부턴 고민하지 않았어요.”

‘님은 먼 곳에’에서 김추자의 올드 넘버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던 수애. ‘심야의 FM’은 듣기 편안한 그녀의 중저음을 십분 활용한다.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 음악과 함께 흐르는 DJ 수애의 목소리는 ‘제3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는 “목소리가 부각되는 점이 역할 선택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다.

지나간 역할들이 주로 차분한 외양 속에 화로를 끌어안은 인물들이었다면, 선영은 내면의 이글이글 불타는 감정을 밖으로 폭발시키는 캐릭터다. 지금까지 수애의 입에서 욕설이 나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단아한 여성성으로 대표 되던 이 배우는 이 영화를 찍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 주로 내면의 강인함을 지닌 여성이었죠. 외유내강형. 제가 좋아하는 여성상이기도 했고,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우는 작품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그것만 보여줄 순 없었죠. 위험 앞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 동생이 살해당하고 한 번 바닥까지 무너지지만 다시 딛고 일어나 딸을 구한다는 설정이 그런 갈증을 느끼고 있던 제게 확 다가왔어요. 처음엔 저와 너무 다른 것 같아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예쁘게 보이는 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영화 전체를 통틀어 입고 나오는 옷도 단 한 벌이다. 그는 “그런 점조차 반갑더라”고 말했다. “오롯이 제 얼굴, 제 감정으로만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요. 배우로선 해볼 만한 도전이죠. 옷이나 다른 소품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머릿속을 ‘가족’ ‘죽음’ 이런 단어로 가득 채웠어요. 예쁘게 보이는 거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비탈길에서 전력 질주하다 구두가 벗겨지면서 시멘트 바닥에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살인범 한동수(유지태)가 딸과 조카를 납치해 태운 택시를 추격하는 장면이었어요. 무릎과 팔꿈치를 부딪쳤는데, 아픈 건 둘째치고 창피해서 눈물이 났죠. 몸보다 마음이 앞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제가 학교 때 육상선수 출신이어서 달리기를 잘 해요. 동수가 모는 택시를 쫓아가는데 택시보다 어느새 앞서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웃음)” “몸보다 마음이 앞섰다”는 얘기를 하며 ‘열정’이라는 단어를 쓴 대목부터 조금씩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영화 홍보에 열의를 갖는지.

한 고비 넘은 것 같아요, 지금은 동료가 보이고

“예전엔 촬영장에서 나만 생각했고 나만 보였어요. ‘님은 먼 곳에’ 할 때부터 조금씩 (몸이) 풀린 것 같아요. 지금은 동료배우가 보이고 감독의 조언이 들려요. 한 고비를 넘은 것 같아요. 영화를 알아가고 소통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는 스스로를 “촬영장에서 긴장감을 많이 느끼는 배우였다”고 말했다. “미리 준비해가서 탈진되기보다는 내 에너지를 현장에서 100% 발휘하자는 쪽이었어요. 그래서 머리 속에 상황과 인물을 그려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죠. 현장에서 이게 잘 안 풀리면 연기의 미숙함으로 표출이 돼요. 미숙하니까 제가 긴장을 많이 느끼고, 그러다 보니 즐길 수 없는 배우가 돼버렸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같이 작업했던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설령 흥행이 안 됐더라도 우울하지만은 않아요. ‘심야의 FM’ 조명감독님이 시사회 때 ‘수애씨가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아서 반사판을 많이 못 해줬다. 조명이 부족해 덜 예쁘게 나온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이제 슬슬 몸이 풀린다는 이 배우가 확실히 현장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얼마나 큰 폭발력을 보여줄까. 여유와 자신감을 충전한 수애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주요 출연작

영화
2010년 심야의 FM
2009년 불꽃처럼 나비처럼
2008년 님은 먼 곳에
2006년 그해 여름
2004년 가족

드라마

2010년 아테나-전쟁의 여신(촬영 중)
2007년 9회말 2아웃
2004∼2005년 해신
2004년 4월의 키스
2003∼2004년 회전목마
2003년 러브레터, 맹가네 전성시대



시시콜콜 수애
한때 가수 지망생, 4인조 여성그룹 멤버로 데뷔할 뻔 했죠

올해 서른 살이 된 수애는 2002년 MBC 베스트극장으로 데뷔해 이듬해 지진희·조현재와 출연한 드라마 ‘러브레터’로 스타덤에 올랐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엔 가수지망생이었다. 4인조 여성그룹 멤버로 훈련생 기간을 거치던 중 기획사 형편이 좋지 않아 지금의 소속사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 심은하·원빈·이나영 등을 키워냈던 정영범 대표가 수애의 진로를 연기자로 돌렸다. 정 대표가 수애의 동그스름한 콧망울에 대해 “너는 그게 최고의 매력 포인트니 절대로 성형하면 안 된다”고 고집한 건 지금도 회자되는 얘기다.

수애에게 붙는 수식어는 두 가지. 가장 오래된 별명은 ‘제2의 정윤희’. 1970년대 장미희·유지인과 더불어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와 닮았다고 해서다. 정윤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주로 40대 이상이다 보니 또 다른 별명이 ‘중년 남성의 로망’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커다란 눈으로 대표되는 단아하고 정갈한 외모, 스캔들 없는 사생활이 강점이다. 지난해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구두수선공 아버지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드레수애’. 이달 초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때 선보인 붉은색 이브 생 로랑 원숄더 드레스를 비롯해 각종 행사의 레드카펫에서 선보인 우아한 드레스 패션 덕분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별명 때문에 드레스 한 번 고르려면 수십 벌을 놓고 고민한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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