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S] MVP 박정권 “최고 코치는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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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제는 남편에게 맡겨도 된다고 여겼을까.

 SK 박정권(29·사진) 선수의 부인 김은미(29)씨는 한국시리즈(KS)를 앞두고 “잘 하고 오라. 즐겁게 경기하라”고만 말했다. 박정권은 “‘일침(一鍼) 여사’께서 잠잠해서 내가 더 놀랐다”며 웃었다. 김씨가 ‘믿고 맡긴 남편’ 박정권은 KS 최우수선수(MVP)라는 값진 선물을 들고 귀가하게 됐다. 부상은 3300만원 상당의 폴크스바겐 자동차다.

 박정권이 2010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빛난 별이 됐다.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KS 4차전 1-0으로 앞선 4회 초 1사 주자 만루에서 박정권은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2타점 2루타를 쳐냈다. 3패로 몰린 삼성의 기를 꺾어놓는 한 방이었다. 인천과 대구를 오가며 KS 4경기를 치르는 내내 박정권은 단연 돋보였다. 15일 1차전에서는 6-4로 앞선 6회 말 쐐기 투런포를 쳐냈다. 3차전에서도 2-1로 앞선 8회 무사 1루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1타점 2루타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이번 KS 성적은 타율 2할9푼4리(17타수 5안타), 1홈런·6타점.

 한국야구위원회(KBO) 출입기자단의 MVP 1차 투표에서 32표를 얻은 박정권은 29명의 지지를 받은 박경완과 결선투표를 벌였다. 총 71표 중 38표가 박정권을 향했다.

 박정권의 이름이 처음 빛났던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그는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4할7푼6리, 3홈런·8타점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에 오르더니 KIA를 상대로 한 KS에서도 타율 3할9푼3리, 2홈런·9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그때 박정권은 “아내 덕이다. ‘밀어치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홈런이 나왔다. 집에 코치님이 계시다”고 흐뭇해했다.

 힘겨웠던 시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부인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박정권은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4년 SK에 입단했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2군이었다. 2005년 상무에 입대해 실력을 키웠고, 제대 후 2007년 SK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2008년에는 팀 내 입지가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해 6월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은 악몽이 됐다. 1루수로 나선 그는 한화 외국인 선수 클락과 충돌했고, 정강이뼈가 세 군데나 부러졌다. 3개월 동안 깁스를 했다. 그는 팀 동료들이 KS 우승의 감격에 취해 있는 장면을 TV를 통해 쓸쓸히 지켜봐야 했다.

 박정권은 “그때는 참 힘들었다. 깁스한 상태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부인 김은미씨가 있었다. 2006년 겨울, 동료의 소개로 만난 아역 탤런트 출신의 김씨는 매일같이 병원을 찾았다. 김씨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주저앉지 마라. 스스로 일어나라”는 아픈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12월 결혼을 한 뒤에는 야구 전문용어까지 섞어가며 충고의 수위를 높였다.

 그런 김씨가 2010년 KS에서는 “당신을 믿는다. 잘 하고 오라. 즐겁게 경기하라. 대신 다치지는 말라”고 코치를 했다. 남편이 듬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박정권은 MVP 트로피를 부인 앞에 바쳤다.

 박정권은 “지난해엔 개인 성적은 좋았지만 팀이 준우승에 그쳐 마음껏 웃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이 기분, 오랫동안 느끼고 싶다”고 감격을 분출했다. 이어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대구=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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