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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낸 쿼터조정안 반응 좋아 다음 총재는 개도국서 나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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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준규(사진) 기획재정부 대외경제자문관은 G20 정상회의 준비과정을 ‘국가 간의 지적 능력 싸움’에 비유했다. 한국이 의장국이라고 해서 그냥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먼저 설득력 있는 한국 안(案)을 내야 한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이런 일을 비교적 잘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IMF 개혁안도 마찬가지다. 이 자문관은 “최근 한국이 IMF와 함께 내놓은 쿼터 조정안이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쿼터 이전에 대해 너무 야심찬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국가 간 협상을 힘들게 했던 일부 개도국들이 한국이 내놓은 안을 “진전된(step forward) 안”이라고 평가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IMF 개혁은 각국이 총론에서 합의하고 각론에서 이견을 달리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이 자문관은 “세계은행과 달리 IMF는 각국 거시정책에 대한 감시 기능이 있는 세계의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각국이 쿼터 조정에 매우 민감하다”고 말했다.

 개도국 입장도 똑같지 않다.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선 쿼터를 과다대표국에서 과소대표국으로, 그리고 역동적(dynamic) 신흥개도국(Emerging Market & Developing Countries·EMDC)으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외환보유액이 많았던 일부 개도국은 쿼터가 많은 과다대표국에 속하기도 한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최근 “IMF 개혁안은 (IMF 회원국 수와 비슷한) 180여 개나 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다.

 이 자문관은 “이번 주말 경주에서 열리는 재무장관 회의가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양보와 타협’이 아주 중요해진 시기”라고 했다.

 현재 16.7%의 투표권을 기반으로 유일하게 비토권을 가진 미국의 쿼터가 유지될지, 미국이 주장해 온 것처럼 유럽의 쿼터가 줄어들지 막판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이 자문관은 “미국과 유럽이 활발하게 양자협의를 하고 있고 양측이 이번 정상회의가 데드라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종 합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IMF 총재 선출과 관련해 한국은 능력 기반 원칙을 확실히 하고 국적은 무관하다는 조항을 넣으려 하고 있다. 암묵적으로 미국은 세계은행 총재, 유럽은 IMF 총재를 나눠먹기 식으로 가져갔던 관행을 깨자는 것이다. 이 자문관은 “우리 안이 받아들여지면 차기 IMF 총재는 개도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10박12일간 미국·유럽·브라질 등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했다. 주로 IMF 개혁과 관련해 목소리가 큰 나라들이다. 그만큼 의장국인 한국이 IMF 개혁안 합의를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86학번인 이 자문관은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일해 왔다. 지난해 2월 윤 장관이 그를 발탁해 장관 보좌관이 됐다. G20 의제와 관련해선 윤 장관의 ‘아바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관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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