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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2만가구의 '행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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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공장에서 막 출고된 자동차. 반짝반짝하는 모습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그런데 단 며칠만 사용해도 중고차로 쳐지면서 값이 크게 떨어진다. 골동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물건이 새것일 때 가장 비싼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아파트만은 분양받을 때 가격이 가장 싸다. 지난 20여년간 분양가를 시세보다 싸게 규제한 결과다. 따라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몇 년 살고 팔 때는 상당한 차익을 남기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선분양이라는 특수한 공급제도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집이니 좀 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주시점까지의 은행 이자를 따져도 그 차액이 훨씬 크기 때문에 아파트를 분양받기만 하면 돈을 버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 결과 1970년대 이후 전 국민이 아파트 투자 또는 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재산 증식을 제대로 못한 것처럼 생각할 정도가 됐다.

"저런 군대 막사 같은 아파트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려고 하느냐." 80년대 중반 서울을 방문했던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의 빌 도블 교수가 곳곳에 서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고 놀라며 했던 질문이다. 콘크리트 막사같이 일렬로 줄지은 아파트 형태는 소련이나 동독 등 공산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으로도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률적인 이런 아파트 형태는 고도 성장기에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쉽고 빠르게 많이 짓기 위해 선택되기도 했지만, 분양가 규제로 인한 측면도 무시하기 어렵다. 분양가를 규제받는 건설회사는 특별히 색다른 형태의 좋은 집을 지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똑같은 모양으로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생겨나고, 외환위기 이후 분양가 규제가 풀리면서 아파트 구조나 외관 등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잘 지으면 비싸게 팔 수도 있다는 경쟁이 주택시장에 도입됐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몇 가지 명제 가운데 하나가 '주택과 관련된 가격(임대료) 규제는 주택의 원활한 공급과 품질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주택과 관련한 가격규제를 "폭격 외에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맨큐의 경제학' 3판, 그레고리 맨큐 지음, 김경환 옮김, 134쪽). 그 이유는 규제는 단기적으로 가격을 낮추지만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줄이고, 수요를 늘리게 돼 주택사정이 나빠질 뿐 아니라 주택의 질도 낮아지면서 도시환경의 악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판교 신도시 아파트 분양을 둘러싸고 과열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2만가구 동시분양이라는 과격한 대책과 함께 자율화했던 분양가를 다시 규제하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판교에서 분양받는 사람들은 상당한 시세 차액을 챙기게 될 전망이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누구나 나도 운만 좋으면 행운의 2만명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결국 투기를 엄청나게 더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정부는 2만가구에 이런 행운을 나눠주는 대가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봤는지 궁금하다. 분양가 규제가 공급 축소를 불러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주택가격을 오르게 할 수 있고, 주택 품질 저하로 인해 도시 환경의 악화를 초래한다는 많은 경제학자의 지적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인지 걱정스럽다.

신혜경 논설위원 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