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식 의결권 행사 기준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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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민연금은 앞으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의 임원이 여러 회사 임원을 겸하고 있어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 또 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기존 경영진을 지지할 방침이다. 다만 인수합병(M&A) 등이 기업의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 새로운 경영진의 손을 들어준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는 24일 그동안 내부적으로 적용하던 의결권 행사기준을 보완해 공개했다. 새로 만든 기준은 28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12월 결산법인의 주총 때부터 엄정하게 적용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적용기준을 만들어 공개한 것은 지난해 말 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되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기금관리기본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러나 임원 해임 및 선임 건의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증권거래법.은행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사 결격사유자(실형 선고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 ▶여러 회사 임원을 과도하게 겸임해 충실한 의무 수행이 어려운 사람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후보자는 재선임을 반대하게 된다. 또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참석률이 60%를 밑돌면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5~6개 회사의 이사를 겸하고 있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럴 경우엔 재선임을 반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기업 총수들은 3개사 안팎의 이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때 이와 유사한 기준을 적용한 적이 있다. 금강고려화학이 1000억원을 들여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등의 주식을 대량 사들였는데 이로 인해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상임이사와 사외이사 선임 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기금운용본부는 "이번에 기준이 처음 공개됨으로써 의결권 행사가 투명하게 됐고,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향방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현재 351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주총에서 98.9%인 347개 기업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신성식.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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