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9] 명품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필통 하나가 33만원이라고 한다. 필시 흔한 필통은 아닐 게다. 역시 루이뷔통이란다. 연필 한 자루가 에르메스 브랜드를 달면 7만5000원에 이른다. 구찌 지우개는 14만원. 포커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학생들은 실제로 이런 고가의 문구류를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듣고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보통사람들을 위한 견고하고 착한 가격의 제품도 많기 때문이다. 지우개 하나가 14만원이라고 분개해봤자 당신 간만 나빠진다. 그런 물건도 있구나, 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차별은 수 백년 전에도 있었다.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쓰던 물건은 일반 시민들이 쓰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질도 좋고 값도 엄청 비쌌다. 굳이 문제를 삼는다면 왕족이나 귀족이 없어진 지금에도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는 정도일 게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력이 신분을 대신 말해주는 시대다. 그래서 그들은 비싸고 고급스런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한다.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려고 그런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돈이 많으니 거기에 맞는 소비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어떤 부자는 10억 짜리 스포츠세단을 탄다는데, 소나타를 타는 나는 뭐냐고 신세한탄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불만이 그런 생활에 다가가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부는 사촌과 친구의 성공에 배 아파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됐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상당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극제 정도로 삼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분노를 축적시킨다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 개인 건강에도 안 좋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설명을 참을성있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흥분하고 욕하고 그 분노를 사회적으로 표출할 때 시원하다는 느끼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은 럭셔리 젖니 보관함이 40만원을 넘고,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아이 목욕솔이 30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면 국세청부터 떠올린다. 그런 사람들은 다 부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았고,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혼내줘야 한다고 믿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공정사회도 부자들을 혼내주지 않고는 목표 근처에도 못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공정사회 캠페인은 정권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정권이 추진하는 공정사회와 덜 가진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사회는 갭이 너무 크다는 말이다. 어떤 노력을 해도 그들의 요구수준을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찬사보다는 '그것 봐, 내가 뭐라 했어'라는 비아냥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