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금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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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금융감독원 고위직 퇴직자가 재취업한 곳이 대부분 금융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금융회사 재취업을 위해 ‘보직세탁’ 등 편법을 썼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조영택(민주당) 의원은 12일 금감원 국정감사 질의자료에서 “2006년 이후 금감원 2급 이상 퇴직자 중 재취업 업체 이름을 밝힌 84명이 모두 금감원 감독을 받는 금융사에 취업했다”고 밝혔다. 이 중 82명은 금융회사 감사로 채용됐다. 업권별로는 증권사로 재취업한 경우가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보험사·저축은행·은행순이었다. 이들이 퇴직 뒤 재취업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7일 정도에 불과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2009년 이후 퇴직자(38명) 중 71%가 7일 이내에 다시 취업했다. 퇴직 바로 다음 날 금융회사에 취업한 경우도 32%에 달했다. 이는 퇴직자들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 심사일과 퇴직일을 일부러 맞췄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조 의원의 지적이다.

배영식(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국감 자료에서 “금감원 고위직 퇴직자들이 이른바 ‘보직세탁’을 거쳐 금융회사 감사 자리로 옮겨 갔다”고 주장했다. 최근 3년 내에 담당한 업무와 관련 있는 기업으로의 취업을 제한한 공직자윤리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퇴직 대상자는 미리 지방출장소나 인력개발실로 발령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되자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감사 공모제’를 권고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선(한나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감사를 선임한 금융회사 39곳 중 공모제를 통해 감사를 임명한 곳은 4곳(신한금융투자·동양생명·미래에셋생명·메리츠화재)에 불과했다. 그나마 3곳은 금감원 퇴직자들만 공모에 참가했다. 이런 이유로 올해 선임된 금융권 감사 중 60%가량이 금감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 의원은 “허술한 현행 감사공모제는 금감원과 금융회사 간의 ‘공모’를 확인시켜 주는 제도일 뿐”이라며 “더 효과적이고 엄중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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