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2년] 中. 경제 정책 누가 주도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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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에 관한 한 참여정부 초기의 최대 실세는 이정우 초대 정책실장(현 정책기획위원장)이었다.

이 전 실장은 경북대 교수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공언한 '7% 성장론'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정책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청와대 빈부격차.차별 시정위원장을 겸임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분배 정의가 서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형적인 분배론자로 꼽힌다.

참여정부는 청와대 경제수석직을 없앴고 경제부처 장관의 대통령 독대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각 경제부처 현안은 청와대 정책실을 거쳐야 했다. 자연히 이 실장에게 힘이 실렸다.

노 대통령이 '가장 뛰어난 공무원'으로 칭찬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조차 이 실장의 뜻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제통이었던 김 전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법인세율을 경쟁국 수준으로 내리겠다"고 나섰지만 이 전 실장의 제동으로 이를 1년 뒤로 미뤄야 했다.

그의 분배론은 '(2003년)10.29 부동산대책'으로 나타났다. 종합부동산세제 등 부동산 보유세제를 강화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내수 경기가 침체하는 와중에도 이 전 실장은 경제부처 일각의 경기부양론을 끝까지 반대했다.

이 전 실장과 함께 집권 초 노 대통령의 경제관을 대변한 사람은 대통령의 '가정교사'였던 조윤제 전 경제보좌관(현 주영 대사)이다. 부동산 정책이나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조 전 보좌관의 보고서는 그대로 노 대통령의 뜻이 됐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뜻이 담긴 정책에 관한 한 경제부처와의 협의에서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부처 장관들을 '가장 힘들게 한' 인물로도 꼽힌다. 그가 "임대주택에 중형을 포함시켜선 안 된다"고 끝까지 우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 대통령이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기 시작한 지난해 중반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내각으로 넘어갔다. 2004년 6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입각하면서 경제부처 간이나 청와대와 경제부처 간 이견 조율은 총리가 맡았다.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출자총액한도제의 완화를 놓고 이견을 보이자 이 부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도 이 총리였다. 이후 이 부총리는 종합투자계획, 임대주택 활성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등 경제부처 정책을 주도적으로 입안할 수 있게 됐다.

이정우 초대 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박봉흠 실장이나 김병준 실장은 이 전 실장과 달리 경제 현안에 대해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다. 조 보좌관의 후임으로 온 정문수 보좌관도 공무원.기업인.교수를 두루 거쳐 현실론자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내각이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구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정우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분배론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말 1가구 3주택 소유자에 대한 중과세를 둘러싸고 이 부총리와 이 위원장이 맞섰으나 '원칙대로 강행'을 고집한 이 위원장의 뜻이 관철된 게 대표적인 예다. 경기 때문에 실용주의 노선이 득세했지만 청와대의 깊은 기류는 여전히 분배론에 가 있다는 얘기다.

정경민.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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