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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되는 자리, 금통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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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금융 쪽 일을 하는 이들은 이쯤 되면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얘기다. 금통위원이 주로 하는 일은 통화 운용, 즉 금리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깊은 내공이 필요하다. 안으로 물가 압력을 살펴야 한다. 통화량·금리·국내총생산(GDP)은 기본이다. GDP갭률·안정가동률(NAIRCU)·안정실업률(NAIRU)·유동성갭률…. 듣기에도 암호 같은 용어와 숫자들을 꿰야 한다. 밖도 주시해야 한다. 외자 유·출입, 대외신뢰도는 물론 주요국 환율과 국내외 금융시장 속사정까지. 그런다고 답이 딱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숫자들은 저마다 다른 말을 한다. 어떤 땐 정반대다. 주가는 오르는데 경기 전망은 더 암울해지는 식이다. 그런 불확실성을 뚫고 이 나라의 ‘기준이 되는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자리가 왜 6개월째 공백일까. 청와대가 낙점을 안 해서다. 금통위원은 모두 7명이다. 한국은행 총재와 부총재가 당연직이다. 나머지 5명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은·대한상공회의소·은행연합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번에 빈자리는 상의 몫이다. 그러나 추천권을 가진 상의는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금융가에선 “말이 추천권 행사지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를 그대로 추천하는 게 관례”라며 “그런데 청와대가 아무 사인을 안 주니 상의 측도 답답할 것”이란 말이 오간다. 청와대는 왜 미룰까. 첫 번째 해석은 워낙 좋은 자리라 골라 주려고 아낀다는 거다. 두 번째는 청와대가 급할 게 없다는 거다. 금통위는 이미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다수다. 정부의 뜻을 거스르고 금리 결정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인선을 서두를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뭐든 없어 봐야 진가를 안다. 금통위원 한 자리가 빠진 금통위는 어떨까. 한은 측은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7월에 한 번 금통위 의결 정족수를 못 채울 뻔한 게 전부란다. ‘없어도 별 문제 없는 자리’인 게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놔둘 이유가 없다. 아예 이참에 뿌리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애초 비상근이던 금통위원을 상근직으로 만들고 파격 대우한 건 1998년부터다. ①명망 있는 인사를 모셔 ②정부나 외압에 흔들림 없이 ③큰 틀의 나라 경제 고민에 전념하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요즘 현실은 어떤가. ①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를 모셔 ②정부 방침에 잘 따르도록 하다 보니 ③나라 경제 고민엔 질끈 눈감기 일쑤다.

그럴 바에야 금통위원을 비상근으로 되돌리면 어떨까. 우선 국고를 아낄 수 있다. 금통위원 한 명에 어림잡아 1년에 10억원쯤 들어간다. 5명이면 약 50억원이 절약된다. 비상근이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 정부 눈치 덜 보고 소신 결정을 내리기도 쉽다. 나라 경제의 장기 성장과 안정이란 목표에 더 충실해진다는 얘기다.

세계는 요즘 숨가쁜 통화전쟁 중이다. 안팎의 경제가 요동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럴 땐 특히 금통위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선 되레 ‘못 믿을 금통위’란 인식이 많다. 한 증권회사 임원은 “지난 7월 금리 인상에 대해 청와대가 노발대발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이후 두 달간 금리가 동결된 것도 그 때문이란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교감해야 할 금통위가 정부와 더 교감한 탓이다. 그는 “금통위 말을 믿고 금리 인상에 베팅한 이들만 손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내일은 10월 금통위가 열린다. 이번엔 정부 말고 시장과 더 소통할 수 있을까. 애초 기대 밖이다. 7인도 어려울 터에 ‘6인 금통위’임에랴.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