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젊은 검사들이여, 인간 성찰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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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며칠 전 전국의 평검사 500여명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20, 30대의 젊은이로 일선에서 직접 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일꾼이다. 인사 발령이 있으면 이들은 분주히 이삿짐을 싸고 자녀들을 전학시키고 주변에 급히 작별인사를 한 뒤 전국 방방곡곡의 임지로 떠난다. 1, 2년에 한번씩 홍역처럼 겪는 대이동을 검사들은 숙명으로 여기고 산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사건을 접하게 될 것이다.

크건 작건 모든 사건에는 특유한 인생의 문제가 스며 있다. 검사가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사건의 객관적 범죄성 규명뿐 아니라 그 사건에 스며 있는 이러한 인생의 문제에 대한 성찰도 놓쳐서는 안 된다.

초임검사 시절, 차를 후진하다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치사케 한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당시 사망사고는 예외없이 구속하던 때라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서슴없이 서명해 결재를 올렸다. 즉시 부장검사의 부름이 있었다. "자네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는 이미 백번 천번 구속되는 것보다 더 가혹한 형벌을 그것도 평생토록 받으며 살아가야 하네." 필자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인생에 대한 성찰이 너무 모자랐던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우리 헌법상의 최고이념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검사의 임무인 범죄 규명보다 훨씬 중요한 상위가치(上位價値)임을 내심으로 수긍하는 데는 한참 더 시간이 걸렸다. 최근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은 현격히 줄어든 것 같다. 참으로 바람직한 발전이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언사와 모멸을 당하고 돌아와 이를 하소연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범죄의 자백을 준엄한 추궁과 설득이 아닌 모멸적 언사로 얻으려 드는 것은 그 적법성은 차치하고라도 별 실효성이 없다. 나아가 그 사람은 평생을 두고 검찰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검찰의 설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하게 수사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공명심에 의한 사건의 왜곡 내지 과장이다. 지난해 어느 수사기관이 일으킨 만두사건이 그 전형적인 예다. 만두소로 아무런 해가 없는 단무지의 끝자락을 으깨어 썼는데 이것이 썩은 쓰레기 단무지로 둔갑했다. 보도가 있자 모든 만두 판매가 중단되고 영세한 업체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과거 검찰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 검사들이 명념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수사란 본질상 검사와 피의자 간의 대치와 긴장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며칠에 걸친 긴박한 대치 끝에 손수 구속한 피의자의 조사를 마치고 서류를 덮으면서 그에게 담배라도 한 대 권하고 잠시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라. 검사의 그런 말 한마디에도 그들은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최근 필자가 아는 모기업체의 사장이 특수부 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간의 강도 높은 조사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끝내 기대했던 범증을 찾아내지 못하자 그 검사는 "사장님, 솔직히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으나 의도했던 사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번 수사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일부 탈세사실이 드러났습니다만, 이는 본래의 수사 초점도 아니고 다른 기업에도 흔히 있는 일이므로 별도로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단, 반드시 세무서에 자진신고하고 그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십시오." 그 사장은 오랜 조사에 극도로 지쳤지만 좋은 마음으로 검찰청을 나왔다고 했다.

요즘 젊은 검사들은 과중한 업무로 주말도 퇴근시간도 따로 없는 것 같다. 여기에다 국민의 요구는 너무나 크고 무겁기만 하다. 흔들리지 않는 구도자(求道者)의 몸가짐, 그리고 사회악을 단숨에 척결해 정의를 구현하는 흑기사(黑騎士)의 역할을 함께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사들은 때로는 한없이 외롭고 때로는 깊은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그들의 노고에 힘입어 나라의 기본이 이만큼 유지되고 있음을 국민은 안다. 젊은 그들이 추상열일(秋霜烈日)의 결의에 보태 항시 인간적인 성찰을 잃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김경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