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EU 헌법안 비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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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스페인은 20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76%의 찬성으로 유럽헌법안을 비준했다.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 중 국민투표에 의한 방식으로 유럽헌법안이 비준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통합 유럽의 근간이 될 헌법안이 첫 관문을 무난히 통과한 것이다. 앞으로 국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인 다른 나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의회 표결을 통해서는 슬로베니아.리투아니아.헝가리 등 3개 국가에서 비준안이 통과됐다. 유럽헌법안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25개 회원국 전체의 비준을 얻어야 한다.

◆ 압도적 지지=스페인 내무부는 최종 개표 결과 투표자의 76.7%가 찬성, 17.2%가 반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투표율은 42.3%에 그쳤다. 유권자가 대체로 무관심했다는 의미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비준이 확정된 뒤 "투표 결과는 우리의 결정을 기다린 동료 EU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라고 말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은 "스페인 국민은 유럽과 미래에 찬성표를 던졌다. 앞으로 몇 개월 내에 투표를 치를 다른 회원국 시민들에게 강한 신호를 보냈다"며 환영했다.

투표율은 당초 예상했던 수준보다는 다소 높았다. 그러나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장군 사후 민주주의가 회복된 뒤 실시된 역대 투표율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스페인 정부는 선거 참여 및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총력 홍보전을 펼쳤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투표 직전 스페인을 찾아 지원 유세를 펼쳤다.

◆ 영국.프랑스는 불안=스페인의 비준은 앞으로 잇따라 실시될 각국의 국민투표와 의회 표결에도 낙관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럽헌법은 이제 출발에 불과하다.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인 영국과 프랑스는 가결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5~6월께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의 경우 헌법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주35시간 근로제 폐지 등 국내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국민투표에 그대로 반영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통합에 거부감이 강한 영국의 여론도 부정적이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선 3분의 2가 헌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르면 5월 국민투표가 예정된 네덜란드도 부결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꼽힌다. 폴란드와 체코 등 중동유럽의 EU 신규 회원국 일부도 가결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EU 가입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통합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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