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東山再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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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 동진(東晉·317∼419)에 사안(謝安)이라는 사대부가 있었다. 그는 재능이 출중했음에도 관직에 나서기를 거부했다. 항저우(杭州) 근처 동산(東山)에 은거하며 왕희지(王羲之) 등 당대 문인들과 유유자적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주위의 권고를 못 이겨 한때 관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내 일이 아니다’라며 한 달여 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그러던 383년 8월 북부의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에 쳐들어왔다. 위기였다. 사안은 조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험에 빠지게 되자 비로소 동산에서 나와 재상에 올랐다. 그의 복귀를 계기로 동진은 힘을 결집했고, 전진을 물리쳤다. 당(唐)나라 역사서 『진서(晉書)』의 ‘사안전(謝安傳)’에 나오는 얘기다.

이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 바로 ‘동산재기(東山再起)’다. 사안이 동산에서 나와 재기했듯, 은퇴했거나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성공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흔히 쓰는 권토중래(捲土重來) 역시 같은 맥락의 말이다. 당나라 말기 시인 두목(杜牧·803~852)이 지은 시 ‘오강정(烏江亭)’의 한 구절이다. 두목은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게 패했던 오강(烏江)을 지나며 이렇게 읊는다. ‘병가의 승패는 예상할 수 없는 일(勝敗兵家事不期), 실패와 좌절을 견디는 게 남아로세(包羞忍恥是男兒), 강남에 수많은 인재들이 남아있거늘(江南子弟多才俊), 그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올 것을 왜 몰랐단 말인가(捲土重來未可知)’. 항우가 재기를 노리지 않고 사실상 자살의 길을 선택했음을 아쉬워한 시다.

거꾸로 자포자기를 뜻하는 말로 ‘일궐부진(一蹶不振)’이 있다. 말 그대로 한 번 넘어지고는 다시 떨쳐 일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漢)나라 문장가인 유향(劉向)이 쓴 『설원(說苑)』에 나오는 ‘한 번 목이 멘다고 식음을 끊고(一咽之故, 絶谷不食), 한 번 넘어졌다고 나서지 않는다(一蹶之故, 却足不行)’라는 구절에서 유래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재기를 놓고 ‘동산재기’요 ‘권토중래’라는 말이 나온다. 어디 손 대표뿐이겠는가. 실패와 좌절을 견디는 이 땅의 남아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일궐부진에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병가의 승패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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