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지금 상황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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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원자바오(左), 간 나오토(右)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전격 회동했다. 공식 회담이 아닌 25분간에 걸친 짧은 회동이었지만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로 갈등을 겪은 뒤 이뤄진 양국 정상들의 첫 만남이다.

두 사람은 이날 ASEM 만찬 후 복도에서 만나 양국이 전략적 호혜관계를 진전시킨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지금 같은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른 시일 내 장관 간의 고위급 협의를 베이징에서 열고 ▶중단됐던 민간 교류를 부활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는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간 총리가 “센카쿠열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로, (중·일 간)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원 총리는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라고 답했다.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일 관방장관은 5일 이날 회동에 대해 “대국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신화통신은 “이날 만남은 회담(會見)이 아닌 25분간의 대화(交談)였다”고 보도했다.

◆회의장 복도 의자에서 25분=이날 만찬이 끝난 뒤 복도에서 만난 두 정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자에 앉았다. 간 총리는 “‘자, 자, 앉을까요?’라는 식의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날 회동이 우연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치원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해프닝이 (정상외교에서) 일어날 리가 있겠느냐”며 사전에 양국 정부의 조율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원 총리도 때마침 주일 중국대사관에서 오랜 근무 경험이 있는 일본 전문가와 동행했다.

◆‘중국 위협론’ 의식한 중국=ASEM 개막 전까지만 해도 정상회담을 거부하던 중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국제사회의 ‘중국 위협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언론들은 이번 사태에 관한 중국의 대응을 계속 비난해왔다. 갈등이 지속되면 중국에도 좋을 게 없다. 당장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게 될 다음 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요코하마에서 개최) 회의 등 글로벌 정상외교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기류에 따라 원 총리는 이날 회동에서 “중·일 간 전략적 호혜관계가 양 국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일관계가 단기간에 순탄하게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중국 군사 지역에서 불법 촬영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달 체포된 일본인 1명이 여전히 중국 당국에 구속돼 있다. 일본이 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센카쿠열도 주변에서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중국 측의 불만도 여전하다.

도쿄·베이징=박소영·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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