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정구 스타 박순정 16년 전 금 ‘광저우서 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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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는 위력적인 서브로 상대를 압도한다. 네트 앞에서 바운드 없이 공을 받아넘기는 포핸드 발리는 20대 초반 선수들 못지않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 정구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박순정(수원시청)이다. 그의 올해 나이는 38세. 다른 종목에서는 감독을 맡을 나이다. 하지만 꾸준한 몸관리로 10살이 넘게 차이 나는 후배들과 동등한 게임을 펼친다. 박순정은 16년 만에 아시안게임 대표로 복귀해 다시 한번 금메달을 노린다.

#제1막-아버지를 잃다

16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여자정구 대표 박순정. [김민규 기자]

박순정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 정구 단체전과 복식에 출전했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2관왕을 노렸지만 복식 8강전을 앞두고 아버지가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순정만 아버지 사고 소식을 모른 채 경기에 나섰다. 사고 내용을 알고 출전한 파트너 박영아는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었다. 결국 8강에서 탈락했고, 경기가 끝난 뒤 박순정은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실신했다. 그는 충격으로 인해 정구를 그만두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위해 다시 라켓을 잡았다. 그는 “포기하고 싶었다. ‘금메달을 따고 고향에서 잔치를 열자’고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려 괴로웠다”며 “하지만 복식 우승을 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그는 95년 세계정구선수권대회 단체전과 복식에서 우승했다. 특히 복식 금메달을 딴 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는 날이라 의미를 더했다.

#제2막-정구를 잊은 채 지내다

95년 겨울 은퇴를 선언한 박순정은 소속팀 농협의 금융분야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머릿속에서 ‘정구 스타 박순정’을 지우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2001년 농협을 퇴직한 그는 2009년까지 공인중개사로도 활동했다. 정구는 아예 잊고 지냈다. 운동에 대한 욕구는 마라톤으로 채웠다. 하루 20㎞ 이상씩 뛰며 몸관리를 했다. 하프 마라톤 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했고, 풀코스도 3시간30분대의 좋은 기록으로 수차례 완주했다. 그는 “정구를 그만두니 다른 운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게 마라톤이다. 거의 중독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모습을 본 고복성 수원시청 감독이 2008년 박순정에게 조심스럽게 복귀를 권했다. 그는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이 있기에 섣불리 복귀를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 감독의 끈질긴 설득을 못 이겨 2009년 7월 수원시청 정구팀으로 복귀했다. 마음 한구석에 정구를 향한 애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제3막-이제는 광저우다

박순정이 복귀했을 때 지도자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40살에 가까운 선수가 20대 초반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는 ‘늙어서 안 된다’라는 평가를 듣기 싫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연습에 매진했다. 결국 2010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복식 최종예선에서 권란희(25·사하구청)와 호흡을 맞춰 우승을 차지했다. 마라톤으로 꾸준히 체력을 관리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90년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장한섭(42) 여자 정구대표팀 코치와 훈련 중이다. 박순정은 “16년 전에는 (장)한섭 오빠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코치와 선수 관계가 됐다”며 웃었다. 대표팀에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그는 20대 초반의 선수들과 친해지기 위해 아이돌 가수 노래를 듣고, 최근 유행하는 TV 프로도 꼬박꼬박 시청했다.

대표팀 분위기에 적응한 박순정은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을 앞세워 아시안게임 2관왕(단체전·복식)을 노린다. 그의 시선은 16년 전 금메달을 땄던 히로시마에서 광저우로 움직이고 있다.

글=김환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박순정은 …

▶생년월일=1972년 7월 13일 ▶체격=1m67㎝·56㎏ ▶소속팀=수원시청 ▶포지션=전위

▶학력=청도 중앙초-청도여중-상주여상-농협중앙회-수원시청 ▶가족관계=남편·아들(11살)

▶경력=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 95 세계선수권대회 단체·복식 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취미=마라톤·등산 ▶장점=집중력 ▶휴대전화 첫 화면 문구=‘넌 아시안게임 2관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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