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의원 해외시찰 일정과 경비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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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해외여행은 다른 문화와 제도를 직접 체험하고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급변하는 세상에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아선 안 된다. 지방의원들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각 고장과 도시를 어떻게 꾸려가는지 살펴보고, 책임자와 만나 교류 방안을 협의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등을 떠밀어서라도 내보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이른바 ‘해외연수’에 나서고 있다(본지 9월 29일자 20면). 전국적인 현상이다. 자매도시 방문, 도시개발사례 시찰, 엑스포 견학 등 명분은 그럴 듯하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관광성 외유(外遊)’의 냄새가 짙다. 연말을 앞두고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급조된 외유라는 의심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외여비’란 항목으로 매년 수억원대의 예산을 책정해놓고 해외 나들이를 다녀오는 게 관행이 된 지방의회도 많다. 국민들이 낸 혈세를 눈먼 돈쯤으로 여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여행 목적 자체가 불투명한 사례도 많다. 제주도의회의 경우 의원 41명 중 38명이 5~6일간 외국여행을 했다. 유명 관광지 방문이 일정에 포함됐다. 서울시의회는 밀반출된 문화재 환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과 프랑스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다룰 사안인 문화재 환수 문제에 대해 지방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지방의회들도 유사한 해외여행을 했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의원들이 해외 유명 관광지를 떼지어 몰려다니는 볼썽사나운 풍경은 국가적 망신이다. 연수를 빙자한 관광성 출장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구색 맞추기로 형식적인 공식 일정을 끼워 넣는 행태도 없어져야 한다.

이 참에 지방의회는 의원들의 해외연수와 관련한 모든 경비와 일정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후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조례(條例)를 제정하기 바란다. 떳떳한 해외연수라면 숨길 이유가 없다. 의회 홈페이지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뭘 토의했는지, 경비는 얼마나 들었는지 밝히면 된다. 더 이상 관광성 외유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