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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소설 부문 당선작] 손 - 이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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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러스트=김태헌]

냉동고에서 꺼낸 노인의 주검은 잠을 자고 있는 듯 편안해 보인다. 사망진단서에 뇌졸중이라 쓴 것을 보지 않아도 조용히 잠을 자다 숨을 거두었단 것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얼굴의 실핏줄이 터지거나 팬티에 똥을 묻힌 따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넘어가는 숨을 잡으려 안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노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죽음이다. 임종 후 몸이 굳기 전에 입힌 수세 옷도 깨끗하다. 모처럼 손맛을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지점장이 건네준 시신은 대부분 온전치 못했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목뼈가 부러졌거나 잔뜩 물에 부푼 시신들이었다. 사람이라기보다 사무실의 집기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시신들 앞에선 곧바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엉망인 시신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이리저리 구상을 하곤 했다. 잔뜩 머리로 그럴 듯한 포장 방법을 그렸으나 막상 시신을 만지면 손이 엇나가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비닐장갑을 낀 손은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덥석 덤벼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급냉된 시신이 더운 공기와 만나면서 흘러내린 진물과 피고름. 진득한 이물질이 독소를 뿜어내며 손에 감겨들 때의 기억은 끔찍했다. 바늘 끝으로 쑤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빨갛게 부풀어오른 손은 고무풍선 같았다. 급기야는 크고 작은 수포까지 생겨 몇 며칠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렇게 앓고 난 손은 고철덩어리 같았다. 고철덩어리에게 손님을 맡기진 않았다. 장갑을 낀 염습시간은 당연히 길어졌다. 대체 요즘 이 과장 왜 그러는 거야. 일을 할 땐 사이보그가 되라구. 전설의 손은 어디로 간 거야. 그렇게 느려 터지면 우리 지점이 꼴찌라고. 이번 성과금은 날아간 줄 알아.

길어진 염습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지점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손을 노인의 얼굴에 댄다. 천천히 어지러운 생각들을 하나씩 비워낸다. 회사에서 자꾸만 바닥을 치는 실적과 무뎌지는 손 감각, 어젯밤 채팅에서 만난 여자의 수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아내.

아내를 비워내기엔 너무 버겁다. 대신 가슴 밑바닥에 조용히 가라앉힌다. 무념무상의 상태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찌릿한 기운이 인다. 지글지글 뜨거운 기운이 핏줄을 타고 손으로 몰린다. 시신과 내가 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이것은 나만의 의식이다. 희미한 울음소리가 귓가로 속삭이듯 들린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울음소리인 것 같다. 노인의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이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의 울음소리다. 울음소리에도 손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나치게 울음소리가 크면 실수를 하기 십상이다. 손발을 감싸는 습신을 신기지 않거나 천둥번개가 쳐도 시신의 움직임이 없도록 관 안에 동서로 놓는 혼백함인 운아를 빼먹을 때도 있다. 대부분 고객이 알아차릴 수 없는 실수이긴 하지만 지점장이 알면 근무평점 최하위 점수를 줄 일이다. 전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의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드물게 운이 좋은 날이다.

손끝의 열기가 식기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지어야한다. 손놀림은 정확하고 빠르다. 2인 1조로 염습을 하지만 나는 혼자 하기를 고집한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일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아직 내 호흡을 맞출 만큼의 장례 플래너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딱딱하게 굳은 노인의 몸은 물건이나 다름없다. 나는 염습을 포장이라 여긴다. 완벽한 포장은 나의 작품이 된다. 특히 오늘 같이 최상품의 향나무관 포장을 맡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무뿌리나 뱀, 벌레 따위들이 침투하지 못하게 짙은 향냄새를 뿜어내는 관은 내 발치에 있다. ‘날아라 상조’란 글씨가 새겨진 흰가운 자락이 관을 스칠 때마다 향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시신의 손톱과 발톱을 자르고 삼베옷을 입히기 위해 굳은 손목과 어깨를 꺾는다. 우두둑, 뼈 꺾이는 소리가 울음소리와 섞인다. 가지런하게 머리를 빗기고 알코올로 깨끗하게 닦아 둔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발라준다. 조심스럽게 턱을 약간 밑으로 젖히자 꼭 다문 입이 벌어진다. 십 원짜리 동전을 혓바닥 위에 올린다. 저승의 강을 건널 때 뱃사공 카론에게 줄 배삯이다. 이물질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입과 코, 귀에 솜을 틀어막는다. 마지막으로 멧배를 한다. 시신의 몸체가 움직이지 않게 뼈마디마다 일곱 가닥으로 묶을 때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낀다.

허리를 펴고 영안실 벽에 붙은 시계를 본다. 2시간이나 흘렀다는 사실에 맥이 빠진다. 20분 안에 염습을 끝냈던 최고의 내 기록에서 멀어도 한참 먼 시간이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향나무관 뚜껑에 뚝 떨어진다. 극심한 손의 피로감을 느낀다. 아내가 사라진 뒤로 생긴 현상이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쉰다.

입관을 이렇게 늦게 하면 어떻게 해. 문상객들에게 이런 결례가 어딨어. 에이, 진작 상조회사를 바꿀 걸.

굴건제복을 입은 상주가 입관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친다. 내가 손을 움켜쥐고 멍하게 상주의 얼굴을 바라볼 때 음식냄새가 코를 찌른다. 식당 쪽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손에서 나는 포르말린 냄새와 섞여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어제 사무실에서 울렁거렸던 속이 다시 뒤집어지는 것 같다.

복지사가 상담을 성공시켰을 때 사무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대어를 낚았다고, 손님이 중소기업의 사장이라며 마치 고래라도 잡은 듯 모두들 손뼉을 쳤다. 일주일 동안 일거리가 없었던 터라 기분은 한껏 달아올랐다. 더욱이 뭉칫돈을 뿌릴 게 틀림없는 상갓집이지 않던가. 나는 축제에 따돌림 당한 사람마냥 울렁이는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울렁이는 속을 달래려 호흡조절을 한다. 문상객들이 봇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갑자기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사내들이 나를 밀치고 영안실로 들어간다. 사내들의 등판에 붙어있는 ‘웰다이 상조’란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상조회사에서 가장 꺼리는 일이다. 함께 장례예식장에 설쳐대면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장된 울음소리가 영안실 복도를 울린다. 정갈한 시신과 달리 산만한 장례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이봐,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 줄 몰라. 자네한테 맡긴 내가 잘못이지. 쯧쯧. 이러다 지방으로 전출 당할지도 몰라.

빈소에 있던 지점장이 어느새 온 걸까. 내 귀에 바짝 댄 지점장의 입술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새로운 상조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본사에선 날마다 지점장들을 볶아대는 듯하다. 사무실 벽에 부착된 커다란 전광판에서 자유로울 직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삼일장이 끝나는 내일이면 우리 지점의 붉은 숫자도 하나 올라갈까. 붉은 숫자는 저승으로 보낸 사람의 숫자를 의미하지만 어쩐지 괴물처럼 보인다. 아파트 붕괴나 지하철 충돌 따위의 대형사고로 사람들이 떼로 죽기를 바라는 괴물.

*

아내는 내 손을 카론이라 했다. 저승의 강을 건너지 못해 헤매는 혼들을 배에 실어 나르는 뱃사공 카론. 아내가 처음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카론의 얘기를 들려줄 때 나는 막 백혈병으로 죽은 남자아이의 염습을 하고 나왔었다.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난자리였다. 한마디로 선을 본 것이다. 내 직업을 알고 선뜻 결혼 상대로 나서는 여자는 없었던 터라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놀랍게도 아내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반갑게 웃었다. 붉은 잇몸이 스타벅스 테이블 등빛에 유난히 반짝였다. 숫기가 없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애를 먹었다. 이리저리 머리 속을 뒤적이다 결국 백혈병으로 죽은 아이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나무젓가락 같은 아이의 몸을 솜으로 닦고 예쁘게 옷을 입혔다고 말하자 아내는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유심히 손을 살폈다.

카론, 신의 손!

촉촉한 입술 사이로 나오는 목소리에서 나는 확신을 했다. 내 여자가 될 수 있겠다고.

카론은 내 닉네임이다. 문득 아내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란 생각이 든다. 오늘 산 여자는 아직 덜 익은 애다. 채팅에서 나이를 속인 것 같다.

어젯밤 늦게 컴퓨터를 켜고 채팅에 접속했을 때 딸기방엔 여자들이 몇 명 없었다. 닉네임을 보면 대부분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있는데 데드메신저란 이름에서는 좀 헷갈렸다. 죽음을 전하는 사람. 데드메신저란 조잡한 영어의 조합에 픽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카론의 역할과 별반 차이 없다는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나는 선뜻 작업을 걸고 말았다.

데드메신저는 작은 키에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로 나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닉네임이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는 당돌하게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며 앞서간다.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못이기는 척 따라간다. 성숙한 몸보다 조금 덜 익은 상태가 오히려 손의 감각을 살려내기에 더 좋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깊숙이 손을 찌른 바지주머니 속에 손가락 마디들이 발을 뗄 때마다 허벅지를 둔탁하게 두드린다. 많이 둔해진 손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만날 때부터 껌을 질겅거리던 아이는 모텔 입구에서도 딱딱 소리를 낸다.

껌 뱉고 들어가지.

아이는 내 말을 씹는다. 더 요란하게 딱딱 소리를 내며 모텔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여자들처럼 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여자들은 카운터에 돈을 낼 때도 옆에 달라붙어 있고 방을 찾아갈 때에도 계속 애인처럼 굴어 성가시었다. 쉬고 갈 거냐 자고 갈거냐고 모텔주인은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고 묻는다. 나는 기계적으로 삼 만원을 내민다. 쉬고 가는 금액이다.

방에 들어와서도 아이는 더 빠른 템포로 딱딱 껌소리를 낸다. 머리가 어지럽다.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산만하면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제발… 그, 그걸… 뱉을 수 없겠니?

심하게 말이 더듬어진다. 신경이 곤두서면 나오는 증상이다.

캬캬, 아저씨 반병신이구나. 알았어. 껌 뱉을 테니 돈부터 주시지.

아이는 껌을 휴지에 싸지도 않고 후, 하고 쓰레기통으로 뱉는다. 그리곤 불쑥 손을 내민다. 나는 지갑을 뒤져 오만 원을 쥐어준다.

에게, 아저씨 지금 장난하셔? 씨발. 내가 확 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미성년자 성매매.

나는 담배를 하나 물고 나서 다시 오 만원을 더 얹어준다. 다른 여자들은 오만원이면 세다고 고마워하기까지 했는데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영계가 비싸다고 한 지점장의 말을 떠올리며 씩 웃는다. 아이도 만족한 듯 입꼬리를 당기며 옷을 벗는다. 바나나처럼 벗겨지는 아이의 알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돌아선다. 샤워기 물소리가 들리고 가볍게 침대의 스프링이 튀는 소리를 들으며 어둠이 깔리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켜지고 하나 둘 밝혀지는 네온사인. 도시의 밤은 낮보다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침대에 삐딱하게 몸을 기대고 누워있는 아이는 생각보다 몸이 영글어있다. 봉긋하게 나온 젖가슴이며 허리라인도 어느 정도 살아있다. 꼰 다리 사이로 새카만 머리카락 같은 거웃도 보인다. 나는 군침을 삼키며 오래도록 손을 씻는다.

반듯하게 누워봐.

이제 안정을 찾은 듯 낮고 굵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아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 돈 받은 만큼 일을 한다는 표정이다. 그리곤 질끈 눈을 감는다. 굳이 얼굴에 수건을 덮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낯선 눈은 감정 몰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산 여자는 수건을 덮자 자신을 해치는 줄 알고 기겁을 하며 돈도 내팽개치고 도망가 버렸다.

피아노를 치듯 두 손을 가슴 높이만큼 올린다. 무릎걸음으로 더 바짝 아이 몸 가까이 간다. 삐걱이는 침대소리가 잠잠해질 때를 기다린다. 방음장치가 잘 돼 있는 모텔은 집중하기 좋다. 아이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가 손으로 모아진다. 나는 천천히 아이의 가느다란 목에 손끝을 댄다. 킥킥, 간지러운 듯 아이는 몸을 비틀며 웃는다. 쉿! 짧고 엄한 내 목소리에 아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오돌오돌 소름이 돋고 있는 살갗에 손끝을 스치자 봉긋한 젖가슴에서 유두가 돌출된다. 살살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유두는 앵두마냥 붉어진다. 태양빛에 농익은 과즙을 힘껏 입으로 빨듯 유두를 움켜쥔다. 순간 아이의 비명이 잘못 두드린 건반처럼 튀어나온다. 재빠르게 허리선으로 손을 옮긴다. 아이는 금세 낮은 숨소리를 낸다. 이제 손은 배꼽 주위로 돈다. 조금 손끝에 힘을 준다. 출렁 뱃살이 움직인다. 물에 뜬 배가 출렁이는 물살에 중심을 잡지 못하듯 손은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보드라운 털이 떨어진 손을 감싼다. 성숙한 여자들보다 거웃이 탐스럽다. 아이의 허벅지가 바르르 떨고 있다. 떨고 있는 살갗은 더없이 손의 감각을 살린다. 갑자기 아이가 다리를 벌린다. 거웃에 번진 촉촉한 물기가 불빛에 반짝인다. 그것을 보자 내 아래가 뻣뻣하게 일어서는 것 같아 조금 놀란다. 아내에게는 일어나지 않던 현상이기 때문이다. 머리통을 가랑이 깊숙이 밀어 넣고 뜨거운 입김을 분다. 손을 내밀어 물기를 만져보려 할 때 아이가 내 손을 낚아챈다. 내 손가락을 부러뜨릴 태세다. 아랫도리가 급하게 쪼그라들고 만다.

변태새끼! 다른 꼰대들하고 다르거니 했더니 역시나야. 나는 진짜 하고 싶단 말이야, 씨발놈아!

아이는 길길이 욕을 해대며 거칠게 옷을 걸치곤 나가버린다. 절반 밖에 만져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단단한 종아리와 얇게 저며 놓은 살코기 같은 발목의 주름, 꼼지락대는 하얀 발가락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는 배터리가 반만 충전된 듯한 양손을 맞잡고 손가락을 꺾는다. 우두둑, 시신의 팔다리 꺾이는 소리와 닮았다.

*

저녁 9시.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아파트 앞 놀이터를 지나 리키다소나무가 즐비한 산책로를 걷는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아파트 뒤쪽엔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다. 가로등이 끝난 지점에서 되돌아오지 않고 내처 걷는다. 바짓가랑이를 스치는 마른풀의 버석거림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만큼 왔을까. 흑요석 같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 아내가 사라지고 난 뒤에 생긴 습관이다. 어둠은 수면 캡슐 안에 누운 채 바다 깊숙이 잠수해 들어갈 때의 부드러움으로 몸뚱이를 휘감아온다. 의외로 편안하다. 장례학과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다니던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 행정학은 좀체 친해질 수 없는 학과였다. 커다란 세계전도를 펴놓고 그 위에 드러누워, 낯선 나라의 오지로 이민가 버리는 상상만 했다. 막막했다. 낮에는 빛이 두려웠고, 밤에는 어둠이 버거웠다. 날마다 편두통에 시달렸다.

편두통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너무 어려 애비에미를 잃어버린 탓에 머리가 충격을 받은 게야. 할머니는 물수건을 내 머리에 얹어주며 말하곤 했다. 동남아로 여행을 갔다 비행기 추락사로 너만 살아 돌아왔다던 할아버지의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어린 탓이었을 것이다.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부모의 빈자리를 조부모가 다 메워 주었다. 비가 오면 학교 대문 앞에 서 있고 소풍을 가면 도시락을 싸들고 따라왔다. 나는 할머니의 젖을 빨고 할아버지의 고추를 만지며 컸다. 군대에 있을 때 두 분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열흘 사이를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두 차례나 장례를 치렀던 탓에 특별휴가를 끝내고 자대에 복귀할 때는 군에 다시 입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대하고 돌아온 집은 텅 비어있었다. 두 분의 영정사진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오지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잠시 도서관 좌석을 옮긴 정도의 의미밖에 없을 터였다. 결정적으로 이민에 대한 생각을 접게 된 건 친구가 던져 준 대학입시요강을 보고서였다. 장례학과. 백프로 취업이란 현란한 문구를 훑어내린 건 눈이 아니라 손이었다. 수시, 영좌설치, 초혼, 염습, 입관, 죽어서 별이 되는 우주장,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 빙장. 손은 글자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제까지 장례학과를 선택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마냥 흥분했다. 편입은 쉬웠다. 커다란 인형을 눕혀놓고 염습하는 강의를 들을 때 마음은 한없이 평온했다.

현관문을 열고 코를 킁킁댄다. 아내가 사라지고 삼 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냄새는 집안에 그대로 고여 있다. 거실의 불을 켜자 아침에 나가면서 올려 둔 신문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있다. 깡마른 사내가 깨진 거실 거울 속에서 나를 노려본다. 아내가 깬 거울은 흉하다. 볼 때마다 바꿔야지 하면서도 여태 걸어두고 있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온다. 소파에 앉아 부엌 쪽을 바라본다. 생선튀김 냄새와 참기름 냄새, 밥냄새 등 온갖 냄새를 풍기며 풍성하게 차려지던 식탁엔 먼지가 뿌옇게 앉아있다. 음식솜씨가 좋으면 성욕도 강하다고 집들이에 초대된 지점장이 은밀하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불고기잡채와 팔보채, 탕수육으로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던 동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음식을 혀끝에만 대도 짜릿하게 온몸의 감각이 열리네. 이 대리는 밤이 무섭겠어. 불행히도 나는 혀끝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풍성한 반찬들이라도 깨작거리기 일쑤였으니까. 나는 아내의 몸을 만질 때만이 감각이 열렸다. 그것도 손에만.

아내는 온 몸이 성감대였다. 조그마한 터치에도 까르르 숨이 넘어가듯 웃었다. 웃음을 아파트 경비에게도 지하철 옆자리 사내들에게도 헤프게 흘려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불평은 하지 않았다. 아내의 몸은 내 손을 훈련시키기에 훌륭한 도구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상조회사에서 전설의 손으로 떠오른 것도 좋은 아내의 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간다. 입은 옷들을 벗고 간편복을 꺼내기 위해 옷장 문을 연다. 흰가운과 까만색의 양복 두 벌, 트레이닝복 두 벌. 그 외엔 모두 아내의 옷이다. 아내의 옷들은 뒤집어지고 구겨지고 짓눌린 채 빼곡하게 걸려있다. 어질러 둔 아내의 물건들을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정리하려 들면 아내는 곧잘 짜증을 냈다. 좀 내버려 둬. 자유롭게 살고 싶다구. 자유를 입에 달고 살던 아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내가 사라진 뒤, 나는 귀찮은 뒤처리를 근 한 달 동안 무덤덤하게 수행했다. 파출소와 경찰서, 처갓집과 아내의 친구들, 하루에 서너 번씩 들락거리던 마트까지. 하지만 집 안에 남아 있는 아내의 기록들에서도 특별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록이라고 해봤자 달력이나 책갈피에 낙서된 요리재료나 생필품 목록이 전부였다. 스스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경찰에서 요청한 아내의 머리카락은 어쩐지 마음을 찜찜하게 했다. 만약을 대비한 유전자 감식용이라며 조심스럽게 경찰은 말했다. 아내의 머리카락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방바닥과 화장대 주변 곳곳에 떨어져 있는 게 아내의 긴 머리카락이었으니까.

옷걸이에서 동백꽃이 프린트된 잠옷이 방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마치 아내가 잠옷을 벗어 내게 던지고 마트로 반찬거리를 사러간 것만 같다. 나는 흐드러지게 그려진 동백을 집어 올려 옷걸이에 건다. 그리곤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아내의 옷을 만진다. 밍밍한 음식 맛처럼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전 여자아이의 아랫도리가 자꾸 떠오른다. 만져보고 느껴보지 못한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맹렬한 충동이 다시 살아난다. 벗어 둔 주머니 속을 뒤져 핸드폰을 꺼낸다. 데드메신저란 발신자 번호가 뜬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천천히 폴더를 덮어버린다.

아내는 섹스를 하기 전 내 손을 정성스럽게 마사지했다. 뜨거운 물수건을 손에 감싼 뒤 마사지 크림을 잔뜩 발랐다. 미끌미끌 내 손가락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아내의 손은 작고 사랑스러웠다. 작은 손이 기다란 내 손가락 하나씩을 잡아 쭉쭉 늘이고 손끝에서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낼 때면 기이하리만큼 손에 불꽃이 일었다. 활활 타오르는 손은 내 몸을 지배했다. 손가락 끝에서 모든 생각이 나오는 것 같았다. 화장실을 가는 것이나 밥을 먹는 것까지도 손이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사지를 끝낸 손은 한결 풍부한 표정을 지었다. 가뭄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피부는 보드랍고 푸른 정맥은 더욱 선명했다. 손가락 굵은 마디 안쪽에 돋아난 털도 부드럽게 누웠다. 슬며시 손바닥을 뒤집으면 비밀이라도 간직한 듯한 손금들. 진하고 옅은 손금과 손가락 끝에 동글동글 무늬진 지문들을 보노라면 신들의 문자를 읽는 기분에 젖곤 했다.

신과 섹스를 하는 것 같아.

아내는 내 손끝이 닿을 때마다 흥분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잔뜩 아내를 흥분만 시켰지 한 번도 아내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결혼 후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발기불능이란 진단을 내렸다. 아마도 어릴 때 비행기 사고를 당하면서 파편조각이 성기를 건드린 것 같다고 했다.

예민해진 손은 염습에 탄력을 받았다. 손은 성능이 좋은 센서였다. 내게 맡겨진 시신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대부분의 장례 플래너들은 장례예절이나 행정적인 일을 선호했지만 나는 염습과 입관을 전문으로 맡았다. 내 실적이 최고에 달하자 본사에서 파견으로 돌렸다. 전출과 파견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전출이 귀양의 의미를 띈다면 파견은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최고의 대우와 보수는 당연한 것이었다. 가장 실적이 올라가지 않은 지점으로 파견된 나는 검은 양복자락을 휘날렸다. 침침한 형광등을 400볼트의 할로겐 전구로 모조리 바꾸고 책상의 위치를 변형시켰다. 냄새나는 화장실을 뜯어 반짝이는 타일을 깔고 벽지를 갈고 온갖 시설물들을 보수했다. 산뜻한 사무실은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꽤 그럴 듯한 논리를 직원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했다. 내 행동을 재수없다고 빈정대던 직원들도 고객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시신이 늘어나자 못 이기는 척 다가왔다. 죽은 사람을 고인이라 부르던 호칭을 손님으로 바꾼 것도 나의 아이템이었다. 전문적으로 울어주는 곡비 도우미를 두자는 것도, 화려한 색상의 화환을 쓰자는 것도 내가 본사 지식마일리지에 올린 것들이었다. 생각들은 절묘하게 성공했다.

나의 지식마일리지가 올라가고 대리에서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는 동안 손 마사지 기구들도 늘어났다. 스팀기와 비타민 주입기, 태반 주사기. 게다가 해초, 녹차, 감자, 오이 따위의 온갖 팩제들. 직장에서의 신임이 높아질수록 아내의 웃음소리는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점이 전국으로 흩어져 있다 보니 이삿짐을 풀고 싸기에 바쁜 날들이었다. 대전, 대구, 전주, 부산……. 밥상엔 달랑 말라비틀어진 김치쪼가리만 올라올 때도 있었다. 아내는 이불 속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상조회사 유니폼을 가위로 잘라놓기까지 했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충사항부를 본사에 올렸다. 서울에서만 근무하게 해달라고. 많은 지점이 있었던 서울이라 회사대표는 선뜻 내 뜻을 존중해주었다.

장맛비가 며칠째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스팀타월을 가져오던 아내는 느닷없이 뜨거운 타월을 내 얼굴로 냅다 던졌다.

지겨워 죽겠어!

차가운 얼굴을 한 아내는 옆에 있던 마사지 크림통마저 거실 거울을 향해 던졌다. 그 바람에 거울이 쨍하고 금이 갔다.

그 후 아내는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3교대 근무였던 나는 쉬는 날만 집에 있어달라고 말했다. 아내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남자가 있어도 좋으니 당신 몸만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구걸하다시피 했다. 내가 당신의 도구밖에 안 되는 존재야? 아내는 눈물이 그렁한 눈을 애써 부릅뜨며 말했다. 왠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관이 사라졌어.

지점장이 사무실에 들어서는 나를 노려보며 말문을 연다. 영문을 모른 나는 갑자기 오물세례를 받은 느낌이 든다. 부글부글 뭔가 속에서 끓어오른다. 심상찮은 사무실 공기에 지그시 감정을 누른다. 복지사들도 분주하게 뛰며 전화통을 붙잡고 쩔쩔 매고 있다. 어, 어제 손님을 향나무관에 완벽하게 포장하여 입관했는데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말을 더듬으며 묻자 지점장은 눈을 치뜬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나도 당황스럽다. 분명 ‘권상문’이란 이름이 부착된 냉동고 안에 손님을 넣었는데, 라고 나는 입속 말을 한다. 고객이 본사로 바로 항의 전화를 한 상태라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벽에 붙착된 전광판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꼴찌가 된 우리지점의 이름이 빨갛게 점멸한다. 불현듯 유니폼 등판에 볼품없이 찍혀있던 ‘웰다이 상조’가 떠오른다. 발인일이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급해진다.

국화꽃이 장식되어 있는 리무진 옆을 지나 영안실로 들어서자 누군가 다짜고짜 멱살을 잡는다. 팔을 걷어붙인 상주들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서슬이 퍼렇다. 개새끼, 우리집에 재뿌리려 작정했지. 처음부터 재수 없었어. 개뼈다귀 같이 생겨 가지고선 우리 아버지 어떻게 했어? 굴건제복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쏟아내는 말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하지만 나는 손을 쓰지 않는다. 괜히 이런 일에 손을 잘못 놀리면 상처입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상주들의 손에 몸이 휘둘린다. 흔들리는 머릿속으로 그날 일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노인이 누워있던 냉동고 윗칸에 같은 이름이 부착되어 있었다는 사실. 냉동고에서 노인을 꺼낼 때 부착된 인적사항을 자세히 봤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가 끼어든다. 맏상주인 듯한 굴건제복이 한참 동안 전화를 받고나서야 그들은 내 몸에서 떨어진다.

비상등을 켠 버스가 급하게 장례예식장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운구차가 버스라면 향나무관이 아닌 소나무관일 것이다. 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교회장이었던지 대부분 검정색 상복을 입고 있다. ‘웰다이 상조’란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장지가 먼 곳이라 새벽에 정신없이 출발하는 바람에 시신이 바뀌었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사내는 당당해 보인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모양 탓일까. ‘웰다이 상조’의 장례 플래너는 내게 눈을 꽂는다. 마치 내 잘못인냥 질책하는 눈빛이다. 하마터면 재가 될 뻔했다, 고 화장장 앞에서 바뀐 걸 알아차린 자신의 눈썰미를 자랑한다.

관 뚜껑을 열자 시신이 엉망이 되어있다. 버스기사가 먼 길을 가느라 엄청난 속력을 낸 것같다. 가지런하게 빗겨 둔 노인의 머리가 떡이 져 있고 삼베저고리 고름이 풀려 있다. 습신까지 다 벗겨져 있다. 그나마 노인의 얼굴이 훼손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시신의 모양을 정돈하려 할 때 잽싸게 복지사들이 들어선다. 이 과장님은 쉬세요, 라며 복지사 두 명이 내 등을 밖으로 민다. 입 안이 쓰다.

*

여자를 사기 위해 딸기방에 들어간다. 데드메신저가 들어와 있다. 내가 먼저 알은 체를 한다. 아이는 노골적으로 흥정을 하려 든다. 나는 손을 되찾기 위해 아낌없이 쓴다. 아이는 콜이라고 답글을 단 다음 온갖 알 수는 이모티콘을 날린다. 이모티콘은 나를 조롱하는 듯하다. 아무려면 어떨까.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가 액정화면에서 쉴 새 없이 번쩍인다.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아내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얼른 폴더를 열어볼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벼락같은 화를 낼 것만 같아서다. 아내의 전화는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거미줄이나 다름없다. 손이라도 대면 엉망으로 끊어지고 말 끈적한 줄. 깊은 숨을 들이쉬며 폴더를 연다.

S경찰서 수사과입니다.

불쑥 남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갑자기 기운이 쏙 빠진다.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것 같아 손아귀에 안간힘을 준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와 달라고 형사는 사무적으로 말한다. 형사가 뭔가 많은 말을 늘어놓은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나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된 것 같다. 방안과 거실을 서성거리다 시계를 본다. 새벽 한 시다. 손끝이 간질거린다. 터치만 하면 화르르 손의 감각이 살아 날 것 같다. 저승사자가 예고하고 사람을 데려가진 않잖아요.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뜻이죠. 내가 아이에게 왜 데드메신저냐고 물었을 때 아이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친다. 미친 듯이 손을 문지르다 하는 수 없이 데드메신저를 부른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나는 난폭하게 다룬다. 아이는 자다가 온 듯 뻥튀기처럼 부푼 머리를 쳐들고 다짜고짜 욕부터 내뱉는다. 돈이 웬수야. 이런 변태새끼들에게 늘 고귀한 몸뚱이를 바쳐야 하다니! 다급해진 나는 아이의 옷을 강제로 벗긴다. 아이는 내 몸을 밀며 거세게 앙탈을 부린다. 모텔에서처럼 그냥 가버릴까 불안해진다. 알몸의 아이를 덥석 안고 침대로 던진다. 그리곤 서랍장을 정신없이 뒤진다. 아내가 신던 팬티스타킹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발버둥치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누른다. 아이의 손발을 차례대로 침대봉에 묶는다. 아이는 실험대 위에 올려진 개구리 같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겁에 질린 아이의 눈을 수건으로 덮고서야 마음이 차츰 가라앉는다. 형광등불을 끄고 침대 옆의 스탠드를 켠다. 오렌지색의 불빛이 아이의 몸을 더욱 탐스럽게 만든다. 아내가 좋아하던 불빛이다. 베란다로 향한 문을 살짝 열자 찬바람이 아이의 가쁜 숨을 몰아낸다. 아이의 살갗에 모래알을 뿌려놓은 듯 소름이 돋고 있다. 간질거리는 손을 비빈다. 이번엔 아래부터 만져보기로 한다. 꼼지락거리는 작은 발가락과 붉은 매니큐어가 칠해진 발톱들, 발뒤꿈치의 잔주름과 탱탱한 종아리. 야들야들한 허벅지살로 올라온 손은 살사댄스 리듬을 타고 있다. 달아오른 손은 어느새 아이의 풍성한 거웃을 헤집는다. 주저없이 촉촉한 질 속으로 쑥 들어간다. 아, 나뭇가지의 새순이 터지듯 찌르르 손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질감! 나는 부르르 몸을 떤다. 이윽고 뻑뻑해진 눈에서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제야 아내가 죽었다고 한 형사의 말을 실감한다.

신분증을 확인한 형사는 반지하로 나를 데려간다. 가을비에 젖은 옷이 축축하다.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는다. 손은 주머니 안의 먼지 냄새와 허벅지에 돋아난 터럭, 살속에 흐르는 피돌기까지 다 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포르말린 냄새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진하게 풍겨온다. 마치 내 몸이 포르말린 액속에 잠기는 듯하다. 영안실 입구는 호텔 로비 마냥 반지르르 윤기가 돈다. 고개를 쳐들자 지상으로 향한 커다란 창문에 빗방울이 연신 그어지고 있다.

사체의 부패가 심해 유전자 감식을 한 결과 신고된 실종자와 같았습니다.

형사는 흔한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말을 던지며 여러 개의 냉동 캐비닛을 훑는다. 중간지점의 캐비닛 상단에 부착된 이름을 확인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주머니 속의 손을 슬그머니 움켜쥔다. 끈적한 땀이 묻어난다.

형사가 한지를 걷어내자 긴 퍼머머리의 여자가 누워있다. 딱히 아내라고 단정지을 만한 것을 찾아볼 수는 없다. 눈은 짓물러져 있고 코뼈는 주저앉아 있다. 벌어진 입속엔 이물질이 잔뜩 들어가 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얼굴엔 꽁꽁 언 벌레들이 붙어있다. 부패가 심해 급냉을 시킨 탓일 것이다. 이제까지 본 시신 중에서 가장 엉망인 시신이다. 슬쩍 몸통에 덮혀 있는 한지를 밀친다. 순간 내 손은 감전이라도 된 듯 움직일 수 없다. 만개한 동백꽃. 흐드러진 동백이 프린트 된 잠옷을 여자가 입고 있다. 흙이 묻고 갈가리 찢어진 옷이지만 동백꽃만은 선명하다.

내가 유족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 형사는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늘어놓는다. 인적이 드문 산기슭에 버려져 있었고 여성만을 노린 성폭력살인범의 소행이었다고 전한다.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다는 말까지 마친 형사는 내가 작성한 진술서를 훑는다. 검사의 내사 종결지휘서가 떨어지자마자 형사는 짐짝을 떠넘기듯 아내를 내게 넘긴다. 사망진단서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영안실로 향한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지점장이다. 전화를 무시한다. 무단결근을 한 탓에 부재중 통화가 열 통이나 찍혀있다.

나는 오랫동안 아내를 내려다보다 에어컨을 최강으로 올린다. 서늘한 바람이 영안실 안에 떠도는 퀴퀴한 냄새를 밀어낸다. 나는 천천히 장갑을 벗는다.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한껏 깊이 심호흡을 한 뒤 아내의 얼굴에 갖다댄다. 손은 강렬한 열을 뿜어내고 있다. 마치 오르가즘에 도달한 남녀의 체온마냥. 사정을 하고 나면 급속도로 몸이 식기 마련이다. 절정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깨문다. 그러나 손의 생명은 여기까지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굴에 덮인 구더기들이 꽁꽁 얼어있다. 빳빳한 솔로 쓸어내린 구더기가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진다. 언 내장 속에도 벌레들이 잔뜩 죽어 있다. 이럴 땐 빙장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190도로 급냉을 시킨 뒤 잘게 부셔 땅에 묻는다면 험한 꼴을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지저분한 이물질들을 다 털어내고 바닥에 뒹구는 잠옷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을 때 창문이 흔들린다. 놀란 눈으로 창쪽을 보자 세찬 빗줄기가 들이치고 있다. 번쩍, 창유리 위로 번개가 점멸한다. 불현듯 아내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곧바로 수의를 입히려던 마음을 바꾼다. 옷소매를 걷고 박스 안의 붕대를 꺼낸다. 넉넉한 붕대를 작업대 옆에 둔 뒤 탈지면을 든다. 얼굴과 옆구리, 다리로 구멍이 난 곳은 모조리 솜으로 틀어막는다. 긴 머리칼도 싹둑 잘라 오낭에 넣는다. 다섯 개의 붉은색 주머니는 머리카락으로 가득 찬다. 그리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꼼꼼하게 감는다. 손의 열기가 차츰 빠져나가는 것 같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둔 탓이다. 아내의 몸에서 진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화장품케이스를 열고 아이펜슬을 든다. 엷은 눈썹과 속눈썹, 입술라인을 그린다. 붉은 색 립스틱을 칠하자 붕대 속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런 입술이 된다. 적삼, 속저고리, 속치마, 두루마기가 차례로 포개진 수의를 한꺼번에 입힌다. 붕대에 감긴 뼈대가 허물어질까 한껏 조심한다. 하얀 두루마기에 감싸인 아내는 눈송이 같다. 잠깐 고개를 들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외기의 기운처럼 창유리로 스며들고 있다. 비가 갠 하늘엔 별이 떠 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돌린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시신을 내려보던 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입술이 벌어져 있다. 마치 아내가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립스틱을 칠한 붕대가 벌어진 탓이란 걸 알고 나도 웃는다.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칠성판 위에 삼베이불과 베개를 반듯하게 넣는다. 병원에서 지급한 관은 가장 낮은 가격대의 목재관이다. 불에 빨리 타고 부식이 잘 되는 재질. 하지만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할 망자에겐 더없이 좋은 관이다.

아내를 안는다. 깃털처럼 가볍다. 관속에 누운 아내가 움직이지 않게 보공을 한다. 오낭을 넣은 뒤 깨끗한 염포로 덮는다. 가장 완벽한 포장이다. 관 뚜껑을 닫는다. 입관을 끝내고 나자 손이 싸늘하다. 손등의 살갗이 허옇게 일어나 있다. 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던 손…… 이제 삶과 죽음이 확실하게 분리되는 게 느껴진다. 아내에게 잘 가라는 의사표시를 해보려 하지만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끝-



소설 당선 소감
도망치듯 숨어 산 지 10년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소도시엔 물이 많다. 자동차로 10분쯤이면 어디서든 찰랑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호수변 곳곳에 보물섬처럼 나만의 공간을 숨겨 놓고 있다. 고작 10분 거리지만 어쩐지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 제일 먼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일이 팍팍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 때면 도망치듯 그곳으로 숨어들었다. 소나무에서 빗질된 바람이나 산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호수며 귓가를 간질이는 풀벌레 소리들은 더없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곳이었다.

내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일을 잊을 수 있었다. 새로운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일. 인물들을 탄생시키고 길을 내고 집을 짓는 일에 신명이 났다. 인물들 간에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죽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짝퉁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언제나 뒷자리나 대열에 이탈해 있던 나는 목소리 자체를 잃고 살았으니까. 나만의 공간에 숨어들어 산 지 10년째다. 아직도 나는 소설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내가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쯤으로 여길 뿐.

당선 소식을 듣고 호수변으로 갔다. 오랫동안 풀숲에 앉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신춘 때면 병이 날 정도로 당선소식에 목말라 한 적이 있었다. 막상 소식이 날아오자 겁부터 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덜 됐다는 뜻인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빗장을 풀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아직 옹알이 단계지만 글쓰기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끊임없이 갱신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그것이 보답하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 많다. ‘소설’이란 씨앗을 떨어뜨려주신 전상국 선생님, 지칠 때 서로 힘이 되어주었던 문우들, 뜻을 함께 한 든든한 동지 같은 자흥, 언제나 내 편이었던 피붙이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묵묵히 받아준 남편과 시어머니, 직장동료들.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인 예슬과 백석…, 그리고 내 정서를 살찌운 청송의 자연에 감사함을 전한다.

◆이시은=1967년 경북 청송 출생. 현재 춘천교도소 재직중.



소설 심사평

삶과 죽음 잇는 장례 플래너
현대인의 존재성 아프게 그려

본심 심사를 맡은 소설가 박상우(왼쪽)·김형경씨. [안성식 기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양적으로는 풍성한 느낌을 주었으나 작의(作意)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다. 작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건 소설의 주제를 추구하는 초점이 불명확하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기막힌 제재라 해도 중심이 명료하게 생성되지 않으면 소설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진다. 요컨대 소설도 사회적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국내 기성작가의 작품을 확연하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과 다른 신춘문예 당선작의 설정과 흡사한 작품,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해외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도 있어 아쉬움을 더했다.

이런저런 전반적 논의를 거쳐 ‘사랑의 기술’ ‘모두의 저녁’ ‘부드러운 피륙’ ‘손’이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됐다. 논의 결과 네 편 중에 ‘사랑의 기술’과 ‘모두의 저녁’이 먼저 제외됐는데, ‘사랑의 기술’은 참신한 발성법과 사유가 상당한 호감을 샀지만 ‘사랑의 기술’이라는 보편적 주제로까지 천착시키지 못한 가벼움과 소품적 구성이 지적되었고 ‘모두의 저녁’은 소설적 서사와 구성력이 좋음에도 자신의 재능을 살릴 만한 제재를 선택하지 못한 측면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부드러운 피륙’과 ‘손’은 안정적인 구성과 전개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나름 창작의 경륜과 내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피륙’의 단조로운 설정과 평이한 문장력, 결말의 미흡함이 지적되어 ‘손’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됐다.

‘손’은 삶과 죽음을 잇는 장례 플래너를 내세워 한없이 부박해진 현대인의 존재성을 아프게 묘파하고 있다. 천박한 상술로 얼룩지는 장례문화의 현장, 염습과 입관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손은 더 이상 자기 인생의 창조적 도구가 아니라 상술의 도구로 전락해 도태되고 만다. 안이한 상상력을 남발하는 작품이 많은 세태를 감안할 때 ‘손’은 현장성과 서사성의 적절한 배합으로 작가적 역량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고 판단해 당선작으로 뽑았다. 정진하는 작가가 되길 빈다.

◆본심 심사위원=박상우·김형경(대표집필 박상우)
예심 심사위원=김도연·김영찬·박성원·전성태
사진=안성식 기자



소설 본심 진출작(10편)

● 김개영 : 봄의 왈츠

● 김보현 : 여름 밤, 그후

● 김수진 : 맘모스 브리오슈

● 김태정 : 어떤 독백

● 신재연 : 잉글리시 티처

● 오한기 : 모두의 저녁

● 윤지완 : 앨리스가 오지 않는 월요일

● 이루리 : 사랑의 기술

● 이시은 : 손

● 임요희 : 부드러운 피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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