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고양이’ 키티, 자산 가치는 1조 5000억 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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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최근 논란이 된 ‘4억 명품녀’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건 그녀가 방송에서 목에 걸고 있던 헬로 키티(Hello Kitty) 목걸이였다. 헬로 키티(일본 발음으로는 ‘하로 키티’)라는 캐릭터를 그다지 예뻐하지 않는 필자 같은 이에겐 그저 ‘무거워 목 아프겠다’ 싶기만 한 이 목걸이가 4000만원짜리냐 2억원짜리냐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헬로 키티의 라이선스권을 갖고 있는 일본 회사 산리오에서 판매하는 정품은 약 2억원에 달하지만, 명품녀는 개인적으로 보석 디자이너에게 주문해 이 상품을 4000여만원에 제작했다 한다. 결국 얼추 계산하자면 2억짜리 이 목걸이에서 헬로 키티라는 캐릭터가 갖는 무형의 가치가 1억6000만원을 차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헬로 키티는 일본의 ‘국민 고양이’다. 1974년 일본의 장난감 회사인 산리오에서 개발했는데 서서히 이름을 알리다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였다. 키티의 성공에는 ‘셀레브 마케팅’의 힘이 컸다. 가수 가하라 도모미를 비롯한 인기 연예인들이 방송 등에 나와 “저 키티 팬이에요”라고 말하면서, 10~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키티 열풍’이 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온 몸을 키티 제품으로 감싼 젊은이를 일컫는 ‘키티라’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현재 키티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연간 5만 종류의 캐릭터 상품이 새로 나와 세계 70여 개국에서 판매된다. 식품, 학용품,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키티를 그려 넣은 자동차와 전차, 비행기까지 있으니 일본에서는 하루라도 키티와 마주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 일본 경제계가 추산한 키티의 자산 가치는 약 1조5000억 엔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헬로 키티를 만들어낸 산리오가 창업 50주년을 맞는 해로, 일본에서는 여름 내내 키티 관련 축제가 이어졌다. 이 행사들을 보며 느낀 것 중 하나가 “캐릭터 대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구나”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과 시니컬한 판단력을 ‘일시 정지’시키고 무조건 “가와이이~(귀여워)”를 외칠 수 있는 자세다. 한 예로 지난달에는 키티가(사실은 키티의 탈을 쓴 어떤 성우분이) 중장년층의 인기 오락프로인 ‘와랏테 이이토모’에 출연했다.

사회자인 다모리가 “키티는 입이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지?”라고 묻자 키티는 “제 목소리는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이어지는 인터뷰에 따르면 키티의 고향은 영국 런던 교외의 한적한 마을이며,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애플파이란다. 이런 식의 대화를 몇십 분씩 듣고 있자면 “지금 장난해?” “이게 뭐 하는 짓이야?”라는 짜증이 슬슬 솟아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방청객 아주머니들은 속내를 감쪽같이 감추고 박수와 함께 “아 귀여워”를 연발한다. 지난 8월 말에는 키티(사실은 키티의 탈을 쓴 어떤 DJ가)가 한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속으로는 “저 탈 속의 DJ는 누구야?”라고 궁금해했을 젊은 음악 팬들은 겉으론 키티가 들려주는 음악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역시 “귀여워”를 외쳤다.

얼마 전 은행에 새 통장을 만들러 갔더니 창구에서 중년의 은행원 아저씨가 정중하게 물었다. “현금카드는 ‘키티짱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보통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헉. 옆 은행에서는 다른 아저씨가 “푸우짱 카드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더니만. “그 연세에 키티짱이 웬말이세요”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꾹꾹 누르며 ‘캐릭터 대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보기로 결심한다. “네에~, 물론 키티짱으로 해야죠. 아, 가와이이!!”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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