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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비법,전통 지키며 끝없는 현대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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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02면

1710년 6월 6일 작센 왕국의 아우구스트 대제가 ‘왕립자기제작소’를 만든다. 설립 장소는 엘베강 연안 소도시 마이센의 알브레히츠부르크 성.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유럽 최초로 순백색의 경질자기 생산에 성공한 지 2년여 만이었다. 당시 경질자기는 ‘흰 금(White Gold)’이라 불렸다. 전적으로 중국에서 수입했던 탓에 값이 황금 못지않아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로부터 300년. 마이센은 여전히 명품 도자기 브랜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웬만한 도자기 한 점에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런 마이센이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300주년 맞은 독일 명품 도자기 마이센, 그 명성과 변신의 현장을 가다

섬세한 조각같은 단단한 도자기
마이센의 명성이 300년간 지속된 데는 세 이름의 힘이 크다. 우선 앞서 나온 요한 뵈트거. 그가 경질자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주원료인 ‘카올린’을 근처(광산에서 회사까지 12㎞다)에서 찾아낸 덕분이다. 당시 흰 가발에 사용되던 가루인 카올린에 석회 가루(나중에는 장석)를 섞어 단단한 자기를 구울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알아낸 최상의 유약 제조법은 지금까지도 마이센의 비밀이다.

궁정조각가 출신의 요한 요아킴 켄들러는 섬세한 조각같은 도자기를 만들었다. 또 화가인 요한 그레고리우스 해롤트는 이 위에 유려한 그림을 그려 품격을 높였다. 켄들러 조각의 특징은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이다. 주물로 찍어낸 섬세한 작은 흙덩이를 붓에 물을 묻혀 하나씩 도자기에 붙인다. 형태가 완성되면 1200~1300도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뒤 다시 같은 온도에서 재벌구이를 한다. 그러면 백자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한다(이를 상회기법이라고 한다. 하회기법은 유약을 칠하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시 900도에서 구워내면 완성.
전 제작과정은 수(手)작업으로 이뤄진다. 화가 해롤트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패턴을 모방하지 않고 유럽의 풍경과 정물,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오늘날 포슬린 페인팅의 시초이기도 하다.

마이센은 지금까지 80만 개의 도자기 제작용 틀을 제작했고 20만 개의 도자기를 생산했다. 보안이 철저한 페인트 실험실에선 1만 가지의 채색 안료가 만들어졌다.
현재 800여 명의 직원 중 페인터가 350여 명, 판매·유통 전문 딜러가 350여 명이다. 전 세계 30여 곳에 직영 매장이 있다.

베테랑들의 손작업 … 300년의 흔적
지난달 19일 독일 동부 작센주에 있는 마이센 본사를 찾았다. 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도자기 장인 크리스티안 쉐플러(63)가 하얀 접시 위에 병사의 몸놀림을 갈색 톤으로 그려 넣고 있었다. 18세기 그림에서 병사 이미지만 빌려 재창조하는 작업이다.“내 전문 분야는 18세기 인물이나 동물상, 풍경을 도자기에 그리는 것입니다. 그냥 베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특별 주문을 받아 작업을 하기에 나름의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죠. 두 개 이상 같은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 지금까지 지루한 줄 모르고 일해왔습니다.”

마이센이 매년 한정 생산하는 18~19세기 대표작들은 25년 이상 근무한 장인들이 맡는다. 쉐플러는 47년간 이 일을 해왔다. 중학교를 마친 16살 때부터 시작했다. 마이센 기술학교에서 5년간 공부한 뒤 현업에 투입됐고 이 직장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2년 뒤면 정년 퇴임하는 쉐플러는 “정년이 없다면 평생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3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다. 1층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마이센 도자기들로, 2층은 특정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거나 그 나라에 선물로 보내졌던 마이센 도자기로 꾸몄다. 미국 코너에는 베를린에 있는 미 대사관에 선물로 보낸 대머리 독수리 조각이 뉴욕을 배경으로 전시돼 있었다. 러시아 발레리나, 일본 기모노 여인 등도 보였다. 한국 부스는 없었다. 박물관 전시장에 진열된 3000여 점 중에는 켄들러가 만든 3.5m 높이의 ‘영광의 대사원(Great Temple of Honour)’과 1950년 포슬린 디자이너 루트비히 제프너가 제작한 자기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눈에 띄었다. 이 악기는 세계에서 단 2대뿐이라고 한다.

변신의 현장
최근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마이센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2008년 600만 유로(약 90억원)의 적자가 났다. 마이센 소유주인 작센주 정부는 그해 11월 CEO를 크리스티안 쿠르츠케(41)로 전격 교체했다. 이 젊은 사장은 곧 대대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대표적인 포슬린 아트 작가로서 2002년부터 2년마다 마이센을 방문하고 있는 승지민(44) 지민아트 대표는 올해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마이센 공장과 사무실은 다가갈 수 없는, 철저하게 가려진 장막 같았어요. 300년의 비법을 고수하기라도 하듯, 수백 개의 폐쇄된 방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죠. 하지만 올해 와보니 유리가 많이 들어간 현대적 건물로 바뀐 게 눈에 확 들어오네요. 세계 각국에서 밀려드는 문의 및 주문전화를 받고 있는 직원들 모습이 다 보이잖아요. 뭘 물어보면 즉시 아이패드에서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도 적극적이고.”

박물관 아트숍은 사람들로 붐볐다. 1700년대의 전통 디자인을 재현한 고풍스러운 스타일은 한정 생산돼 고가로 판매된다. 전문 수집가용이다. 반면 옛날 형태에 용 문양을 문신처럼 간결하게 표현한 현대적 스타일의 식기 시리즈 8종을 저가로 내놨다. 젊은 중산층 소비자를 위한 전략이다. 쿠르츠케 대표는 최고급 호텔과 럭셔리 상점의 인테리어 디자인 및 건축 등 신규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그 덕분인지 마이센의 2009년 국내 매출은 30%가 증가했다. 총 매출도 3500만 유로로 안정화됐다. 언제 흑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혈기 방장한 젊은 사장이 새 피를 콸콸 수혈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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