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런샹 지음
주영하 옮김, 민음사
608쪽, 3만5000원
여러 면에서 특색있는 음식 관련 책이다. 우선 고고학자가 썼다. 이 분야의 책 대부분이 미식가나 요리전문가들이 맛난 음식· 이국적 먹을거리에 관한 체험을 다룬 에세이라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역사가들이 쓴 여느 책과도 다르다. 커피· 와인· 빵 등 단품의 연원과 파급과정 등을 일화 위주로 파고 드는 대신 “책상 빼고는 뭐든 먹는다”는 중국의 음식문화 전반에 대해 정색하고 다룬 점이 그렇다.
어쨌거나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음식문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식생활을 소재로 한 만큼 책은 풍성하면서도 풍취가 있다. 거론되는 음식도 다양하고 신기하지만 제자백가의 음식철학에서 청 나라 황제의 상차림까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작품 등 문학에서 ‘음식의 도’를 집대성한 청 나라 관리 원매의 ‘수지단’같은 실용서까지 그야말로 ‘문화’를 버무려낸 덕분이다.
중국 오대 시기의 그림. 당시 막 도입된 탁자와 의자의 상차림과 더불어 개인별로 음식을 덜어먹는 ‘분식’ 풍습을 볼 수 있다. [민음사 제공]
그런가 하면 서역과 교류가 이뤄지면서 음식 문화가 한 단계 발전한 한 나라 때는 연회가 성행해 무분별한 음주가 이어졌다. 이에 율령으로 “세 사람 이상이 까닭없이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 일금 넉 냥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규정하기도 했단다. 단 황태자 책봉 등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한해 적게는 하루, 많게는 7일 동안 ‘천하대포 ’라 해서 신하나 백성들이 술을 마시고 놀아도 괜찮은 ‘공식 음주기간’을 두었다.
한 나라 때는 밀가루 음식인 병(餠)을 즐겨 먹었는데 청렴한 관리들은 값싼 보리밥을 먹었다. 맹종이란 관리가 어전에서 구토를 했는데 아침에 먹은 보리밥이 섞여 있자 황제가 “덕이 지극하고 청순함이 더할 바가 없구나”라고 거듭 칭찬했다고 한다.
책은 진지하지만 흥미롭다. 중국 음식 자체가 친근한 소재인데다 요리법에서 국가 대사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음식이 아니라 문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볼 만하다. 여기에 번역자의 정성도 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교수인 옮긴이는 동아시아의 음식문화 교류를 연구해온 이 분야의 전문가. 그럼에도 생소한 음식이나 식재료 이름, 역사적 사실, 다른 학설 등에 관한 600여 개의 주석을 다는 등 번역에 8년 이상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이 책이 맛깔스럽게 읽히는 것도 그 덕이다.
김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