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막을 방법 없나, 공정사회 태클 거는 ‘반칙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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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코노믹 갱스터
레이먼드 피스먼·에드
워드 미구엘 지음
이순희 옮김
비즈니스맵, 350쪽, 1만3000원

미국의 전설적인 갱단 두목 알 카포네는 회계사 출신이다. 시카고 노스사이드 갱단에 합류하기 전 볼티모어의 한 회계법인에서 일했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가 책상에 앉아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 때의 경험은 거대한 범죄 사업을 꾸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그는 매춘·도박·공갈·밀주판매 등을 하며 법의 사각지대에서 돈을 긁어 모았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기관총을 난사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불법을 행함으로써 치러야할 비용과 편익을 분석했을 때 후자의 가치를 더 높게 매겼던 탓이다.

작가는 이런 카포네를 두고 ‘이코노믹 갱스터’라고 정의했다.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 혹은 본인의 양심 따위는 내팽겨쳐 놓고는 자신이 가진 기득권, 지식, 경제적 감각 등 모든 것을 동원해 치부를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코노믹 갱스터는 비단 조폭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독재자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정부 사업을 독식하며 기업을 키운 인도네시아의 만달라 푸트라 수하르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금을 통째로 꿀꺽하는 아프리카의 관료들, 이들 모두 이코노믹 갱스터라는 이야기다.

작가는 왜 도처에서 이코노믹 갱스터가 생겨나는지, 이들을 제지할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분석했다. 그중 한 사례가 뉴욕의 외교관 불법주차 문제다. 보통 외교관들에겐 면책특권이 있어 웬만한 도시에선 불법주차 등의 사소한 위반을 눈감아주는 편이다. 그러나 국제연합(UN) 본부가 있는 뉴욕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2개 회원국에서 온 외교관들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불법주차를 저지른다면 도시 교통을 마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5년간 외교관 일인당 법칙금을 미납한 뉴욕 시내 주차 위반 건수를 봤다. 그 결과 쿠웨이트가 1위, 이집트·차드·수단이 그 뒤를 이었다.(한국은 122위였다.) 이같은 외교가의 악명 높은 ‘이코노믹 갱스터’들 가운덴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 출신이 많았다. 그만큼 위법행위에 대한 ‘정서적 비용’이 적은 탓이었다. 결국 이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선 엄격한 법적용을 통해 경제적 불편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뉴욕시에선 주차금지 구역에 세워둔 외교관 차를 도시 외곽의 합법적인 주차 장소로 옮겨 버리거나, 3회 이상 위반 차량에 대해 외교관 번호판을 떼어내 버렸다. 이런 조치들 덕에 외교관들의 불법주차 행위는 95% 이상 줄었다고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공정사회’가 주요 화두다. 이 책에서 열거하는 이코노믹 갱스터들의 분석을 통해 ‘공정사회의 적들’에 대처하는 방안을 엿볼 수 있을 듯 하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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