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차한잔] 고려인 리포트 펴낸 자원봉사자 김재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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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연해주의 고려인들 중 절반 이상이 무국적인 채로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최근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한얼미디어, 256쪽, 1만2000원)란 연해주 고려인 리포트를 낸 김재영(35.사진) 씨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다. 이 책에는 그가 얼어붙은 땅에서 5년 째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고려인 30명의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 있다.

영양실조로 팔이 굽고, 두 다리로 설 수도 없는 고려인 3세, 23세 꽃다운 순정을 러시아 청년들에게 빼앗기고 정신이 나가버린 여성,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노인과 임산부 등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그에 따르면 스탈린 치하에서 600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던 고려인들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배척당해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해주에서도 러시아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60~70%가 불법 체류자 신세로 그늘진 삶을 살고 있단다.

"연해주는 일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압정을 피해 건너가 생계를 일구고 독립운동을 펴던 곳 아닙니까? 그 후손들을 외면하는 것은 독립지사들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2000년 현지를 다녀온 은사의 전언을 듣고 연해주 행을 결심했다. 2001년 아내 박지영(33) 씨와 함께 고려인돕기회 자원봉사자로 간 그는 처음엔 임시 정착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한 달 생활비가 40만원 정도였다.자리가 잡힌 지금은 파르티잔스크시에 문화센터를 세우고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틈틈이 배운 침술로 4000여 명의 그곳 고려인들 건강을 돌본다.

"고려인들의 실상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4년간 써온 일기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그는 책의 판매수익금과 저자 인세 전액을 고려인의 자립을 돕는 데 기부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재미동포들에게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설을 쇤 후 1개월 일정으로 시애틀, 워싱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할 예정이다.

연해주 봉사자들이 보통 1년이면 귀국한다기에 그는 언제까지 머물지 물었다. "동포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까지는 있어야죠. 거기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고려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의 대답이었다. 그의 아내도 옆에서 말없이 웃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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