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드러난 신한은행 비자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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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열린 이사회에서 신한은행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고문료 횡령 부분에 대해 해명하면서 사용처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희건 명예회장에겐 계약한 고문료의 절반가량만 지급하고, 나머지를 은행 업무 관련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고 신 사장은 밝혔다. 신 사장은 개인적으로 고문료를 착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한은행은 지난 2일 전 은행장이던 신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이 명예회장 고문료 15억6600만원을 인출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신 사장은 이사회에서 이를 반박하면서 고문료 지출 및 사용처를 공개했다. 그는 이 명예회장이 한국에 올 때마다 비서실장을 통하거나,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에게 직접 회당 1000만~2000만원의 고문료를 줬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된 고문료는 5년간 총 7억1100만원이다. 나머지는 이 명예회장의 동의 아래 은행 업무 관련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는 게 신 사장의 주장이다. 은행 측이 명예회장과 계약한 고문료를 다 지급하지 않고 절반 정도를 빼돌려 업무 비용으로 썼다는 뜻이다. 신 사장은 명예회장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는 불투명한 거래다.

고문료의 일부를 신 사장뿐 아니라 라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사용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전성빈(서강대 경영대 교수) 이사회 의장은 “고문료의 일부를 라 회장이 썼는가”라는 질문에 “이사회에서 그런 얘기도 논의했지만 라 회장이 부인했다”고 말했다.

“이백순 행장도 3억원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질문엔 “횡령건에 대해 설명은 들었지만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할 위치가 아니다”며 답을 피했다. 다만 전 의장은 “(자문료 처리가 불투명하게 이뤄진 것과 관련) 내부 통제에 문제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하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횡령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공산이 크다. 익명을 원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이 명예회장이 계약을 한 고문료의 일부만 받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줬다면 마땅히 은행에 다시 입금해야 한다”며 “이 돈을 개인적으로 썼다면 횡령죄, 업무용으로 지출했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돈 중 일부를 라 회장이나 이 행장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 신 사장을 포함해 세 명에게 모두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신 사장은 물론이고 라 회장과 이 행장의 거취가 결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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