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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위, 예산권부터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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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과위가 성공적으로 정착·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편성, 조정권 확보가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력해진다. 큰 부처 입장에서 보면 국과위는 힘없고 귀찮은 상전일 수 있다. 교육·실물경제·국방의 시급한 현안 해결이 우선이지, 시간이 소요되는 연구개발은 보조 수단처럼 보인다. 체계적인 육성에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기획 기능이 약하면 전형적인 관리형 통제를 위한 조직이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금융통화위원회 같은 위원회 조직은 규제가 우선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미래 성장 발전 기반을 위한 모험적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 통제·규제보다는 진흥에 중점을 둬야 한다. 전체 연구개발 예산의 절반 정도는 국과위의 기획을 바탕으로 관련 부처가 집행하는 것이 좋겠다.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조사 분석 기능 강화도 중요하다.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처럼 말이다. 연구개발 분야는 복잡하고 전문적이라 공무원이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를 지원 육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연고주의와 선례를 답습하기 쉽다. 총규모 14조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투자를 위한 세밀한 조사와 분석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과부는 조정 기능이 빠지면서 빈집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 교과부의 의연한 결정은 아주 큰 도량으로 보인다. 기초과학·거대과학·원자력·대학연구·과학교육과 문화 등에 집중해 업무와 정책 개발에 더욱 충실하면서 내실과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국방과학기술연구원(ADD)도 국과위 산하에서 운영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산 전차 포신의 사고 사례는 우울하다. 많은 걱정을 하게 했다. ADD는 방위사업청 산하기관이다. 청 단위 행정기관은 정책보다 집행 기능이 강해 연구개발 진흥에 한계가 많다. 국방 관련 연구개발 예산은 지경부·교과부 다음으로 커 국가 연구개발에 중요한 위치다. 그곳은 30년 전에는 가장 우수한 연구소였고 최고 대우를 받던 곳이다. 지금은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이 외면하는 곳이 됐다. 상대적으로 민간 연구소보다 더디게 발전한 탓이다. 칸막이 식의 운영을 지양하고, 민간 우수 기술을 도입하며, 출연연의 우수한 운영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40여 년 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된 이래로, 출연연구기관들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환경과 기술 변화를 수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민간 부문이 커서 이제는 국가가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능적으로 중복되거나 미진한 분야는 통합 정리하는 자율조정 작업도 요구된다.

이번에 바뀌는 내용이 2년 뒤 대통령 선거 후 또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식되도록 안정적인 제도가 빨리 정착됐으면 한다. 집을 너무 자주 뜯어고치면 살림살이가 힘들고, 이사를 너무 자주 하면 자녀 공부를 망친다.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