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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양념 대충 쓰나요, 골라 쓰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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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미네랄 결핍 채워주는 역할

양념의 역할은 단순히 음식의 맛이나 향을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양념이란 말은 약념(藥念)에서 나왔다. 약을 짓는다 생각하고 음식에 넣어 먹었단 뜻이다.

양념은 한자로 약념(藥念)이다. 몸에 유익한 영양소를 약으로 생각하고 음식에 첨가했다는 뜻이다. 단순히 음식의 맛·향·색을 더하는 부재료가 아닌 것이다. [중앙포토]

『양념은 약이다』라는 책을 쓴 어성초한의원 박찬영 원장은 “양념은 음식 맛을 강조하거나 오래 보존하기 위한 부차적 수단이 아니다”라며 “인간이 화식과 재배식·사육식을 하면서 나타난 각종 영양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낸 해법”이라고 말했다. 재배식물은 야생식물보다 비타민·미네랄·효소·식이섬유 등 영양성분이 절반 수준으로 적다. 양념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요즘 양념은 대부분 빠른 공정을 거쳐 대량생산된 가공식품이다. 제대로 만든 양념은 미네랄·효소·비타민·섬유소 등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간장을 예로 들어보자. 콩을 원료로 하는 간장에는 식물성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하다. 이는 각종 암을 예방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며 여성 갱년기 증상을 완화한다. 콩의 레시틴 성분은 뇌세포를 튼튼하게 하며 비타민E인 토코페롤이 항산화 작용을 해 성인병을 예방한다. 이러한 효능은 발효과정을 거쳐 극대화된다.

콩 단백질을 이 같은 자연 발효가 아닌 염산으로 2~3일 만에 분해하고, 화학 첨가물을 넣은 것이 산분해간장이다. 영양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된장도 마찬가지. 일본 히로시마대 원폭방사선의학과연구소 와타나베 히로미쓰 교수가 된장의 숙성 단계별로 실험한 결과, 콩을 6개월 이상 발효시킨 완숙기 된장이 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된장은 미생물의 복잡한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 과정이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반면 개량 된장은 수입산 대두에 밀가루·정제 소금·화학조미료·착색제가 섞여 1주일도 안 돼 완성된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만들어진 된장을 먹어서는 항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시판 정제염은 대부분 ‘단순 염화나트륨’

우리가 먹고 있는 양념의 대부분은 수입 농산물을 기본 재료로 하고 있다. 재배와 수입과정에서 엄청난 농약에 노출됐다가 공장에서 특정 성분만을 분리·추출해 대량생산한 식품이다.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 성분만 뽑아낸 정제염, 다시마에서 감칠맛만을 뽑아낸 화학 조미료가 그것이다. 여기에 방부제·산도 조절제 등을 첨가해 장기 보관이 가능하도록 했다.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임경숙 교수는 “짠맛을 내는 소금이라고 다 같은 소금이 아니다”라며 “천일염은 미네랄뿐 아니라 마그네슘·칼슘 등 다양한 영양성분이 많은 데 반해 물에 이온화시켜 깨끗하게 만든 정제염은 단순한 염화나트륨에 불과하다”고 했다.

박 원장은 “요즘은 천연 미네랄을 그대로 함유하고 있는 양념, 즉 제대로 발효시켜 영양성분이 그대로 농축된 진짜배기 양념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비싸고 질 좋은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했다 하더라도 영양이 적은 저질 양념을 썼다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저질 양념은 음식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호서대 식품영양학 정혜경 교수는 “우리 음식은 양념을 빼놓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념을 많이 쓴다”며 “어떤 재료로 양념을 했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수입·대량생산 제품, 전통 양념의 기능 못해

지금 먹고 있는 양념은 믿을 만한가.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주재료를 의심한다. 하지만 불량 양념이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분식집의 단무지나 냉면을 먹은 뒤 옆구리가 결리는 등 탈을 일으켰다면 식초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일반 식초가 아닌 석유를 정제해 얻은 싸구려 빙초산이 ‘주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성이 강한 빙초산은 간을 상하게 하고, 피를 오염시키며, 체내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불량 고추장과 된장을 판매한 제조 책임자를 구속했다.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된 제품에 새 원료를 섞고 유통기한을 다시 표기해 판매한 혐의였다. 시가 19억7800만원 상당의 불량 양념은 항공기 기내식으로 170만 개, 나머지는 농협매장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제조·유통과정의 문제로 벤조피렌이 검출된 참기름, 이산화황이 섞인 식초, 쇳가루가 든 고춧가루와 죽염, 바실러스세레우스 세균이 기준치 이상인 쌈장과 청국장 등이 적발되고 있다. 식약청은 지난해 국내 유통 중인 식품 21만8805건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0.92%인 2010건을 부적합 판정한 바 있다.

박 원장은 “같은 맛이 나는 양념이라도 천연 양념과 저질 양념의 차이는 매우 크다”며 “그 영향이 아토피 피부염처럼 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수십 년간 조용히 누적됐다가 암처럼 돌이킬 수 없는 큰 병으로 터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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