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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37>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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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요즘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양반 마을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는 두 마을이 최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물론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더 많은 유적과 문화재, 자연경관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오늘은 소중한 인류의 자산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예영준 기자

1972년부터 세 분야로 나눠 세계유산 지정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 피사에 있는 두오모 광장은 중세 건축의 걸작이 많아 광장 전체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사진은 이 광장의 상징물 격인 피사의 사탑(오른쪽)과 두오모 대성당의 모습 일부. [중앙포토]

세계유산이란 말 그대로 인류가 후손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나 보물을 말한다. 나라별로 국보나 천연기념물을 지정해 보호하는 것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등록 기준과 선정 절차 등에서 유네스코는 보다 독특한 원칙과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교회나 사찰, 유적지나 문화재 등 인류의 지혜와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 대자연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 할 수 있는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복합유산 등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총회에서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 뒤부터다. 인류에게 보편적 가치를 갖는 세계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각국이 협력해 지켜 나가기 위한 목적에서다. 현재까지 모두 187개국이 이 협약에 가입했다. 유네스코는 회원국들이 낸 분담금을 재원으로 다양한 세계유산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45건으로 1위, 한국은 10건으로 21위

지난달 브라질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새로이 21건의 유산이 등록됨에 따라 지금까지 유네스코의 목록에 등재된 세계유산은 모두 911건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70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만리장성·피라미드·타지마할·앙코르와트와 같은 찬란한 인류의 문화 유산이 총망라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유산은 180건, 복합유산은 27건이다. 나라별로는 이탈리아가 가장 많다. 피사의 사탑이 있는 두오모 광장 등 모두 45건의 유산을 유네스코의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스페인이 42건으로 그 뒤를 잇는다. 성 가족 대성당을 비롯한 안톤 가우디의 건축물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등이 등재돼 있다. 중국은 40건의 유산이 등록돼 있다. 만리장성·병마용과 같은 문화유산은 물론이고 주자이거우(九寨溝), 황산 등의 경승지도 자연유산으로 올라 있다. 얼마 전에는 소림사를 비롯한 허난성 일대의 건축물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한국은 이번에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등재되면서 모두 10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순위로는 21위에 해당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아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보존과 관리 체제를 완벽하게 갖춰야만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이미 자국 내에서 국보 등으로 지정돼 국내법에 따른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함은 필수조건이다. 한 번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고 영원히 그 지위를 누리는 건 아니다. 독일 드레스덴 계곡의 경우는 대규모 교량을 건설함으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등재가 취소되고 말았다.

찬란한 유적 없어도 ‘역사’ 기억 위해 선정도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웅장한 건축물,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재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반드시 ‘좋고 아름다운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령 아프리카의 세네갈 연안에 있는 고레(Goree)란 이름의 작은 섬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지만 이 섬에 훌륭한 옛 건축물이 있다거나 찬란한 문화유적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섬은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노예무역의 중계기지였다. 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을 잘 보존해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유산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이 유대인을 강제로 수용하고 독가스 등으로 살해한 아아슈비츠 강제수용소나 2차 대전 말기 원자폭탄을 맞고 건물의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보존되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돔 등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얼마 전 핵실험 사고의 현장인 남태평양의 비키니 섬이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아프간 바미얀 유적 등 34건은 ‘위험 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선정하는 목적은 보존과 보호에 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거나 또는 대자연으로부터 선물받은 유산을 온전히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뜻에서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보호 상태가 좋지 않거나 파괴·훼손의 정도가 심해 위험한 지경에 이른 유산에 대해서는 별도로 ‘위험 유산’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탈레반에 의해 석불(石佛)이 폭파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불교 문화 유적과 코소보 중세 유적지 등 현재 34건의 유산이 위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대부분 전쟁이나 댐 건설 등 토목공사, 또는 관광객 급증이나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인재(人災)’로 보존 위기에 처한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이 위험유산 목록에는 한국의 세계유산 10건은 포함돼 있지 않다. 태평양에 있는 생태계의 보고 갈라파고스 제도는 3년 전 위험유산으로 지정됐다가 최근에서야 가까스로 위험유산 목록에서 제외된 사례다. 다윈이 진화론을 착안한 섬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는 1978년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하지만 그 이후 관광객 증가에 따른 외래종 유입으로 고유의 동식물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급기야는 2007년 위험유산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갈라파고스의 예에서 보듯 세계유산 등재가 유산의 보존·보호란 차원에서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한 해에 한 차례씩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는 서로 자국의 유산을 등록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자국의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는 것은 국가적 자부심과도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갑작스레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면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유산 보호란 원래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록 사업에 대한 비판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세계유산 10건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자연유산, 나머지는 문화유산이죠

한국은 1995년 경주의 석굴암·불국사와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시작으로 지난달 하회마을·양동마을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건의 문화유산·자연유산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시켰다. 이 가운데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일한 자연유산이고 나머지 9건은 모두 문화유산이다.

양동·하회마을(2010년 지정) 두 곳은 지리적으로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한국의 역사마을’이란 주제로 함께 선정됐다. 민속촌이나 보호구역과 같이 박제화된 공간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 및 촌락 구조를 간직한 채 600년 동안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가며 실제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왕릉(2009년) 서울시내의 선릉과 태릉, 근교의 영릉(여주), 동구릉(구리), 홍유릉(남양주), 파주삼릉, 멀리는 강원도 영월의 장릉 등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 40기. 한 왕조의 왕릉이 이처럼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군.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한 세계자연유산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산 전체가 노천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 남산지구와 궁궐터인 월성지구 등 5개 지구를 묶어 경주시내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일본의 교토나 체코의 프라하와 유사한 경우다.

고인돌 유적(2000년) 한반도는 선사시대 돌무덤인 고인돌의 보고이기도 하다. 고창·화순·강화 일대에 고인돌 유적이 군집해 있다.

수원 화성(97년) 비운의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혼을 기리기 위해 정조 대왕이 축성한 성곽과 팔달문, 장안문 등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있다.

창덕궁(97년)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비원’이라고 불리는 창덕궁 후원은 조선의 조경미를 대표하는 곳이다.

종묘(95년)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주 건물인 정전은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단일 목조건축물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다.

해인사 장경판전(95년)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보관하는 시설인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팔만대장경 경판 자체는 이와 별도로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석굴암·불국사(95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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