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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시장들, 잇단 반발 물량 줄이고 시기 늦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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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24면

“우리는 ‘명품 자족도시’를 원했는데 ‘졸속 도시’가 추진돼 실망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국책사업이란 명목 아래 일방적으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추진한다면 ‘중대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갈림길에 선 보금자리주택

7월 27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청 브리핑룸. 양기대 광명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중앙정부를 비판했다. 국토해양부가 광명·시흥 보금자리지구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광명시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양 시장은 “중앙정부가 해당 지자체장의 의견을 들어야지 누구의 의견을 듣는단 말인가”라며 “듣기만 해서도 안 되며 반드시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신이 건축허가를 포함한 각종 인허가 권한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보금자리주택의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양 시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정동영 후보의 공보특보를 지냈다.

양 시장은 지난달 26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에는 비판의 어조가 다소 누그러졌다. 양 시장은 “보금자리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면 치수대책·교통·환경·자족기능 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토부가 일부 내용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도 명품 도시가 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며 “광명시 요구안을 관철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올 3월 말 3차 보금자리지구로 선정된 광명·시흥지구는 면적이 1736만7000㎡(약 525만 평)에 달해 일산신도시(1574만㎡)보다 넓다. 지난해 5월 이후 3차에 걸쳐 지정된 15개 보금자리지구 중 최대 규모다. ‘친서민’을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보금자리주택의 성패를 좌우할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이름에서 드러나듯 광명·시흥의 2개 시에 걸쳐 있는데 시흥시(37%)보다 광명시(63%)의 비중이 훨씬 높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20년까지 광명·시흥지구에서 보금자리주택 6만9000가구를 포함해 총 9만5000가구를 단계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광명시는 주택건설 계획을 9만1000가구로 줄이는 대신 상업·업무·의료·문화 등 지원시설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천시도 ‘절차상 비협조’ 예고
보금자리 사업에 ‘적신호’가 켜진 곳은 광명·시흥지구뿐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시 고등지구에선 개발의 밑그림인 지구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성남시가 공동 사업 시행권을 요구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등지구는 덩치(개발 면적 56만9000㎡)는 작아도 ‘알짜’로 평가받는 곳이다. 서울 강남권과 판교신도시 사이에 위치한 입지 조건 덕분이다. 고등지구에선 보금자리주택 2700가구와 민간 분양 1100가구 등 모두 3800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사업 시행권은 LH가 갖고 있다. 하지만 성남시가 협조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렵다. 이재명(민주당) 성남시장은 판교신도시 개발자금에서 빌린 5200억원을 일방적으로 천천히 나눠 갚겠다는 ‘지불유예’를 선언했던 주인공이다. 지구계획 수립이 늦어지면서 11월 3차 보금자리 사전예약에서 고등지구는 빠질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 유규영 도시주택국장은 “성남에는 분당·판교신도시와 위례신도시의 일부까지 세 개의 신도시가 건설됐거나 추진 중”이라며 “보금자리지구도 국민임대단지에서 전환한 경우(성남 여수지구)를 포함해 두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성남시 개발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지방정부는 제외됐다”며 “지방에도 자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천시에서도 보금자리주택을 둘러싼 중앙과 지방의 힘겨루기가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 김만수(민주당) 부천시장은 지난달 초 “LH가 지역 내 네 군데 개발사업 중 일부를 포기할 경우 옥길동 보금자리 사업에 절차상 필요한 협의를 해 주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118조원의 빚더미에 허덕이는 LH가 지역 개발 사업에서 선별적으로 손을 떼려 하자 부천시가 압박용 카드로 ‘보금자리 비협조’를 들고 나온 것이다. 부천 옥길지구는 이미 올 5월 보금자리주택 1500가구에 대한 사전예약을 받았고 2012년 초 본청약을 실시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광역지자체인 경기도도 나섰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 때 보금자리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산업·물류단지 같은 지역 개발사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경기도에서 지난달 말까지 해제된 그린벨트는 모두 5322만㎡에 달한다. 경기도의 분석에 따르면 이 중 95%(5080만㎡)가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 국책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지자체의 현안 사업을 위해 해제한 그린벨트는 전체의 5%(242만㎡)에 그쳤다. 경기도 김춘식 지역정책과장은 “이런 식으로 보금자리주택만 계속 들어서면 향후 수도권 내 인구집중·교통혼잡·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며 “중앙정부에 개선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6·2 지방선거 후 지자체와 갈등 불거져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그동안 보금자리주택은 “서민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는 칭찬과 “집값 폭락의 주범”이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주로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를 풀어 지어→토지 보상비가 적게 들고→분양가가 대체로 주변 시세의 20% 이상 쌌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에선 3.3㎡당 1100만~1200만원의 분양가로 주변 시세의 ‘반값 아파트’도 공급됐다. 이런 곳에선 당첨이 곧 상당한 시세 차익을 보장한다는 뜻에서 “보금자리는 로또 주택”(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란 말까지 나왔다.

민간 건설업체들은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워낙 싸게 공급하는 바람에 민간 아파트 분양이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한다. 보금자리지구 주변의 주민들은 “보금자리 때문에 집값 하락 폭이 커진다”며 아우성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올 상반기 민간 주택의 공급 감소에 비해 공공의 공급량이 크게 늘었다”며 “보금자리주택 같은 공공 물량의 조정 없이 주택시장의 정상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사업 진행에 필수적인 지자체의 협조에도 이상이 생겼다. 6·2 지방선거 결과 수도권 주요 지역 시장에 민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서다. 상당수 민주당 시장이 잇따라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금자리 사업에 행정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은 특별법에 의해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지만 관할 지자체의 협조가 없으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청약예·부금 가입자 당첨 기회는 많아져
결국 정부의 보금자리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주택 거래 정상화 대책’이 예다. 여기엔 보금자리주택의 공급 시기를 미루고 공급량을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넉 달 전 청와대 정책 소식지에서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민간 분양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지적은 지나친 우려”(4월 26일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라던 주장이 무색해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당초 보금자리주택 지구에서 네 집을 지으면 세 집꼴(75%)은 보금자리주택으로, 나머지 한 집꼴(25%)은 민간 분양으로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8·29 대책에선 지역 특성과 주택 수요 등을 감안해 민간 분양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구체적인 비율은 지구별로 나중에 결정할 계획이다. 전체 주택 건설계획에 변함이 없다면 민간 분양이 늘어나는 만큼 보금자리주택은 자동적으로 줄어든다. 민간 분양은 원래 중대형 아파트(전용면적 85㎡ 초과)로만 계획했으나 앞으로는 중소형(전용 85㎡ 이하)도 허용하기로 했다.

최 수석은 “수도권 그린벨트에서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의 공급 시기를 대폭 앞당길 것”이라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됐다. 공급 시기를 앞당기기는커녕 오히려 늦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당초 보금자리 공공분양 10가구 중 8가구꼴(80%)로 사전예약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8·29 대책에선 사전예약 물량을 5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성남 고등지구가 제외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11월로 예정한 3차 보금자리 사전예약 물량은 1만 가구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1~2차에서 각각 1만4000~1만5000가구의 사전예약을 받았던 것에 비해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국토부는 올해 말 발표할 4차 보금자리지구 후보지를 2~3곳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1~3차에는 각각 4~6곳을 보금자리지구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까지 수도권에서 보금자리주택 60만 가구(사업 승인 기준)를 공급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없을 것이란 게 국토부의 얘기다.

주택 청약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단 청약예·부금 가입자들에겐 보금자리지구에서 당첨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 분양이 확대되고 주택형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은 서울 강남권 보금자리지구에선 내년 상반기에 첫 민간 분양 물량이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달 서울 강남지구(세곡동 일원)와 서초지구(우면동 일원)에서 중대형 아파트를 지을 땅 네 곳을 민간 건설업체에 공급했다. 이 중 강남지구 3개 단지는 1226가구, 서초지구 1개 단지는 55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반 아파트 분양은 당분간 여전히 부진할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의 조민이 리서치팀장은 “8·29 대책엔 업계에서 기대했던 분양가 상한제 폐지나 수도권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같은 내용이 없었다”며 “민간 건설업체들의 주택 공급 차질과 미분양 적체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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