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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별세한 경제학자 최호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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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9일 오후 4시15분 96세로 별세한 원로 경제학자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최호진(사진) 전 연세대 대학원장은 한국에 근대 경제학의 씨앗을 뿌린 학자였다. 경기고를 나와 1941년 일본 규슈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고인은 45년 규슈대 대학원을 마치고 그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맡아 경제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인의 제자인 윤석범(73)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인은) 당시 한국인 최초의 경성제국대 법문학부 교수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유학 시절 한국경제사를 주로 공부했다.

일본어로 발간한 『근대조선경제사연구』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시대나 개항기가 아니라 이미 조선 후기에 고리대자본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맹아가 자라고 있음을 논증했다.

윤 교수는 “이 책은 척박했던 일제시대에 한국인 경제학자가 일본어로 출간한 두 번째 저작”이라고 소개했다. 고인은 한국 경제사를 다룬 최초의 영문서적인『The Economic History of Korea』도 썼다.

고인은 60~70년대 미국에서 경제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한국에 근대 경제학의 씨앗을 뿌린 1세대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복 뒤 일본 유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접고 속속 귀국하자 이들에게 근대 경제학을 가르쳤다.

작고한 임원택 서울대 교수 등 원로학자들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46년 동국대 경제학 부장, 49년 중앙대 경상대학장, 61년 연세대 상경대 교수, 64∼67년 연세대 상경대학장, 75년 연세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윤석범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재무부 장관직을 여러 차례 권했지만 선생님께선 마지막까지 이를 고사하셨다”고 말했다. 교육 분야의 공로 등을 인정받아 고인은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인희씨와 아들 용석(크리이턴인더스트리 대표)·한준(전 메릴린치 부사장), 딸 한옥·한원씨(이화여대 음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8시. 02-2227-7580.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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