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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어부들 고향 거제 농소마을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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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일 오후 1시30분. 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마을 옥철순(72.여)씨 집에 10여명의 주민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1971~72년 오대양61.62호, 휘영37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갔다가 납북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척들이다. 납북 어부들이 북한 묘향산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이 확보됐다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 납북된 어부들의 가족들이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벽에는 납북된 남편이 빠진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거제=박종근 기자

다섯 평 남짓한 옥씨 집 마루에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회장이 들어섰다. 최 회장은 가방을 열고 A4용지 크기의 흑백사진을 꺼냈다. 그는 "가족들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며 사진을 건넸다.

사진을 넘겨받은 유우봉(69.여)씨가 돋보기를 매만지며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흐려서 잘 안 보이네…." 유씨는 눈을 계속 비비며 사진 속의 얼굴들을 하나씩 응시했다. "어, 여기 맞네. 여기 있어, 아이고." 유씨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얼굴로 72년 12월 오대양62호를 타고 북한에 납치된 남편 박두현(69)씨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껴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최 회장이 입수한 사진이 납북 어부들을 찍은 것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유씨에 이어 사진을 넘겨받은 박정순(63.여)씨도 미간을 찡그리며 사진을 응시하다 "아이고, 여기, 여기"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오대양61호를 타고 갔던 남편 이재명(당시 28)씨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30년이 넘도록 가슴에 묻어 왔던 가족들의 모습을 확인하느라 이들은 사진 위에 머리를 맞대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짚어가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그때 너를 잡았어야 하는데…. 아이고, 아이고,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19세의 어린 나이에 휘영37호를 탔던 장남 정완상씨와 생이별했던 이간심(70)씨는 34년간 쌓이고 쌓였던 후회가 되살아났다. "우리 완상이가 너무 착했어요. 집이 가난해서 중2때 학교를 중퇴했는데 아무 불평 없이 고깃배를 탔지요.고구마 같은 거 주면 자기는 괜찮다며 동생들 먹이고."

그러던 완상씨는 어느 날 또 배를 타러 간다며 선불금 9만원 중 6만원을 어머니 손에 쥐여주고 떠났다. 남루한 옷을 갈아입겠다며 가져간 3만원도 못내 미안해하던 아들이었다. "그때 붙들었어야 했어. 못 가게 했어야 되는데. 선생님 우리 아들 좀 찾아줄 수 없나요." 이씨는 최 회장에게 거듭 부탁을 했다.

▶ 납북자 가족들이 사진에서 누군가를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멀리 바닷가가 내다보이는 농소마을은 주민 14명이 오대양호 두 척에 탔다 납북되는 바람에 자그마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1년여 전 납북된 휘영호에 이어 겹재앙이 닥친 것이다. 주민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연좌제'의 고통까지 받았다고 한다.

납북된 부친 황영식(85)씨의 아들 화봉(59)씨는 "어디 간첩만 나타났다고 하면 우리집 주변에 경찰들이 깔렸다"면서 "납북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먹여살리려 선원학원을 다녔으나 신원문제로 선원수첩이 나오지 않아 연대보증인을 세 명이나 내세워야 했다"고 털어놨다.

마을 주민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며 2003년 12월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로부터 "정부는 납북자의 생사확인 등을 하라"는 권고를 받아냈지만 아직 실질적인 생사확인 등의 진전이 없다고 이들은 호소하고 있다.

사진을 입수한 최 회장은 "지금까지 486명의 납북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진을 통해 이들이 북한에 살아있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이 가족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제=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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