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가 독학사 시험 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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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살인죄로 8년째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무기수가 독학사 학위취득 시험에서 당당히 경영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4일 독학사 학위취득자 603명과 함께 학사학위를 받는 박모(34)씨가 그 주인공.

박씨는 1997년 7월까지만 해도 서울의 모 대학 건축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다단계 판매회사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고 빚이 쌓이자 강도를 모의했다. 결국 7월 말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에서 보험설계사 이모(41.여)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저수지에 버렸다. 그는 이씨의 신용카드로 은행에서 120만원을 인출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박씨는 자수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들이 무기수가 된 사실을 알고 70대의 노부모는 충격을 받았으나 장남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하도록 간곡히 설득했다. 박씨는 한 주 걸러 안양에서 광주까지 면회오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2001년 독학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3년 동안 방송통신대의 방송수업을 듣고 4년제 대학 경영학과 학생과 동일한 학점을 이수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독학사 시험 1~3단계인 교양.전공 17개 전 과목 시험을 차례로 통과했다. 그는 올해 초 마지막 관문인 4단계 종합시험에서 경영학과 학생 34명 중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박씨는 앞으로도 8년 정도는 더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모범수라 하더라도 16~17년은 복역해야 가석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어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는 의정부교도소(영어.일어)나 여주교도소(중국어) 등을 거쳐 직업훈련을 받은 뒤 출소할 꿈에 부풀어 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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