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방 DNA 간직한 홍산문화, 중국역사 되면 단군은 중국인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8월 8일, 중국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 박물관이 거대하게 신축돼 개관됐다. 박물관의 중앙 벽면엔 거대한 옥저룡(玉猪龍)이 상징처럼 박혀 있다. 얼굴이 돼지 형상인 옥으로 만든 용.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옥기 중 하나다. 내몽고에는 박물관 신축과 개관, 확장이 유행처럼 번진다. 적봉시 인근의 오한기(敖漢旗)·임서(林西)박물관은 신축을 마치고 올해 후반기에 이전한다. 극십극등기(克什克騰旗) 역사박물관과 파림좌기(巴林左旗)의 요상경(遼上京)박물관은 몇 해 전 신축해 개관됐다. 요하를 중심으로 발견된 고고학적 성과, 즉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을 집중 전시한다.

매년 해오던 요하문명 현지답사를 올해는 8월 5~14일 사이에 했다. 요하문명의 주요 거점인 조양시 골동품 거리 벽면에는 흥미로운 문구가 있다. “중화문명 1000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3000년 역사를 보려면 서안을, 5000년 역사를 보려면 조양을 보라."요하문명은 명실상부한 중화 문명의 기원지로 자리 잡아간다. 중국 땅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성과를 집중 전시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구려ㆍ발해사를 왜곡해 심각한 역사 전쟁을 일으킨 동북공정보다 더 심각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 주도하는 새로운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중국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흥륭와촌에서 옥 귀걸이를 비롯해 수십 점의 옥기가 발굴됐다. 기원전 6200년 전의 것. 엄청난 발견이었다. 흥륭와문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참 뒤인 2004년 7월 24~28일 적봉에서 열린 제1회 홍산문화국제학술연토회에선 이 옥 귀걸이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걸이’이자 ‘중국 옥문화의 기원’이라고 발표됐다. 같은 해 요녕성 서부 의무려산 동쪽의 부신 몽고족 자치현에서는 일곱 차례에 걸친 발굴 끝에 돌로 쌓은 용 형상물인 석소룡이 발견되었다. 발굴은 계속됐다.

8000년 전 치아 수술도 해
1987년에는 내몽고 적봉시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한기 소하서촌에선 요서 지역의 역사지도를 바꾸는 발굴이 이뤄졌다. 반땅굴식 주거 유적에서 기원전 7000년께의 ‘흙으로 만든 얼굴상(陶塑人面像)’이 발굴됐다. 동북아 최초의 것이었다. 유적지는 ‘소하서문화’로 명명됐다. 요하문명이 토해내는 놀라운 유물은 끝이 없었다. 가장 오래된 ‘복골(점치는 뼈)’이 발견된 부하문화(기원전 5200~5000년), 최초의 봉황 모양 토기가 발견된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4400년)가 있다. 절정은 홍산문화였다.

1979년 5월 요녕성 조양시 객라심좌익 몽고족자치현 동산취촌 뒷산 정상에서 대형 제단인 동산취 유적이 발견됐다. 주변 발굴이 계속됐고 1986년 7월 신화통신은 건평과 능원의 경계 지역에서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는 대형제단·여신묘·적석총이 모두 모여 있는 거대한 ‘우하량 유적’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타전했다. 중국 민족이 3황5제의 신화시대로 여겼던 기원전 3500년께에 초기 국가단계 수준을 보여주는 대규모 유적이 발굴된 것이다. 우하량 유적 이전 중국은 기원전 4000년께의 황하 유역 앙소문화와 양자강 하류의 기원전 5000년께 하도모 문화를 중화문명의 2대 원류지로 삼고 있었다.

최근에도 요하문명 지역에서는 새로운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다. 2001~2003년까지 재발굴된 흥륭화문화 유적에서는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더 나온다. 2008년 2월 20일에는 2003년 흥륭구유적에서 출토된 인골에서 인공 치아 수술 흔적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0년 8월 31일 신화통신은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2003년 흥륭구유적에서 발견된 1500여 알의 탄화된 기장과 조(90% 기장, 10% 조)가 ‘세계 최초의 인공재배 기장과 조’라는 것이다.

세계적 권위의 캐나다 토론토대의 탄소-14 연대 측정 결과 7700~8000년 전의 것이고, 이는 중유럽에서 발견된 것보다 2000~2700년 앞섰다. 이 지역이 북방 한작(旱作)농업의 기원지 혹은 그중 하나가 된 것이다. 중국은 이를 ‘세계 중요 농업문화 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로 했다. 요서 지역에서 기원전 7000년으로 올라가는 소하서문화가 발견되고 계속 고고학적 성과가 나와 요하 유역 일대를 ‘요하문명’으로 명명하고 중화문명의 3대 원류로 잡고 있다. 요하문명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키고 있다.

문제는 한민족 문화의 원류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는 요하문명을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영역’이고 ‘중화문명의 실질적인 기원지’로 단정하고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을 동북아의 시원 문명으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것’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2010년 8월 8일 개관된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박물관. 황하문명보다 오래된39요하·홍산문화39를 중국 문화의 기원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명은 한반도 선조 민족이 건설한 문명이다. 고조선의 뿌리 문명이기도 하다. 중국 내에서도 39요하 문명=중국 문화39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사진=우실하 교수

홍산문화로 대표되는 요하문명은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한민족의 선조인 북방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는 ‘시베리아 남단-만주-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 문화 계통으로 황하문명에는 없는 것이다. 다롄대학의 한 교수도 “(이 지역의) 평저통형관은 동북삼성, 내몽고 동남부, 흑룡강 하류 및 한반도 동북구와 서북부 지역에서 발견된다…모두 동방의 전통문화에서 기원했다”고 했다.

흥륭화문화의 상징인 옥 귀걸이도 같은 형태가 동 시대의 한반도에서 출토됐다.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패총이 그것이다. 황하ㆍ양자강 유역의 것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흥륭와문화 옥 귀걸이의 놀라운 점은 사용된 옥에 있다. 압록강변 수암 지역의 옥을 450㎞를 옮겨와 가공한 것이다. 이는 기원전 6000년께 요서·요동·한반도 북부가 동일 문화권이었음을 보여준다.

홍산문화의 우하량 여신묘 제단터에는 희생으로 사용된 곰의 아래턱 뼈가 발견됐고 여신상 옆에서는 흙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곰상이 발견됐다. 옥으로 만든 곰룡, 즉 옥웅룡(玉熊龍)도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홍산문화의 곰토템은 지역이나 시기적으로 단군신화의 웅녀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민족 문화의 원류일 수 있는 것이다.

또 골복은 부여·가야·삼한 등 북방 전통을 뿌리로 한 예·맥족의 나라의 것이다. 『삼국지』위지 동이전’ 부여조에도 ‘부여 사람이 골복을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변한과 가야에서는 삼한시대까지도 골복이 발견된다.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비파형 동검도 황하문명에는 없고 북방민족들이 사용한 검이다. 홍산문화의 계단식 적석총들은 고구려·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중원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에서부터 보이는 ‘치(雉:석성에서 돌출된 부분)를 갖춘 석성’도 고구려에서 부활한다. 이 역시 고구려 이전까지 중원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요하문명은 한반도 선 민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사는 민족의 역사는 중국사" 주장
중국은 그러나 탐원공정을 통해 요하문명을 황제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2004년 7월 24~28일 적봉에서 열린 제1회 홍산 문화학술연토회의 1분과 주제는 ‘요하문화와 중국 문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다. 2010년 8월 10~12일 적봉학원(우리의 대학)에서 개최된 ‘제5회 홍산문화 고봉논단’에선 “요하문명은 중화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논문들이 대거 발표됐다. 올해는 ‘발굴 홍산문화, 전파 중화문명’이라는 주제로 “사회 전반에 홍산문화를 광범위하게 알리고” “홍산문화를 선전, 보급,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됐다.

요하문명의 상징물도 중국화하고 있다. 홍산문화 유적지가 밀집한 내몽고의 적봉시, 옹우특기, 오한기, 요녕성의 능원시, 건평현 조양시 등의 상징을 몇 해 전부터 홍산문화의 상징인 옥저룡(玉猪龍)ㆍ옥웅룡(玉熊龍)으로 교체했다. 적봉텔레비전(1TV-3TV) 상징도 옥저룡이다. 2004년 12월 14~31일 ‘오천년 이전의 문명’ 6부작의 마지막은 ‘홍산문화는 중화문명의 시발지’ 편이었다.

이런 작업에는 ‘현재 중국 영토에 사는 민족은 중화민족. 그들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 ‘56개 민족을 하나의 단일한 중화민족’으로 묶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바탕 이론이다. 오늘의 중국에 맞춰 원시사까지 중국화한 것이다. 이는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1996~2000)’→‘동북공정(2002~2007)’→‘중화문명탐원공정(2003~ )’→‘국사수정공정(2005~2015)’으로 이어지는 논리다.

국사수정공정은 이런 일련의 역사 관련 국가 공정의 완결판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중국사를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2005~2007년 기초자료 수집을 마쳤다. 2007년부터 본격 수정을 시작해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중국의 정사(正史)인 25사를 대대적으로 수정해 재편찬 중이다. 서준(徐俊) 국사수정공정 공작위원회 주임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학자, 전문가가 참가한다. 올해 7월 11일에는 상해에서 ‘제4차 점교본 24사와 『청사고』 수찬공작회의’가 열렸다.

요하문명·홍산문화를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땅’ ‘중화문명의 기원지’로 정리하면 고구려·발해사를 왜곡하는 정도의 ‘동북공정’을 넘어 한민족의 근본이 뿌리째 없어진다. 고조선의 배경인 홍산문화를 신화적 인물 황제의 문화로 만들면 단군·웅녀와 여기서 나온 고조선·고구려 이하 한국사는 자동적으로 중국사로 편입된다. 예맥족, 부여족, 주몽, 해모수 등 이곳에서 활동한 고대 한민족의 선조들은 황제의 후예가 된다. 그 결과 한국의 역사, 문화 전체가 중국의 방계 역사ㆍ문화로 전락한다. ‘탐원공정’의 상고사 왜곡이 갖는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woosilha@kau.ac.kr

중앙SUNDAY 무료체험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