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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드레스 코드에 맞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습니다.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송용진 연출)를 보려면 일단 매표소 앞에서 복장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해골 문양의 옷이나 액세서리로‘해적 인증’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해골모양을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된다. 파티도 아닌데 웬 드레스 코드? 공연을 보면 안다.

미처 준비를 못했다면 해적 배지(500원)를 사면 된다. 해적 복장을 한 배우들이 극장 입구까지 나와 직접 판매한다. 나름 까다로운 절차를 마친 관객들에겐 멀미약을 하나씩 나눠준다. ‘과도한 즐거움’으로 인한 멀미를 가라앉혀줄 특효약이다.

뮤지컬 배우 송용진이 제작·극본·음악감독·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지난해 5월 홍대의 한 클럽 무대에 처음 올려졌다. 제작비 50만원. 인디밴드 ‘딕펑스’와의 콘서트를 20여일 앞두고 ‘반짝’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록뮤지컬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연히 공연 기획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의 눈에 들어 지난 3월 대학로로 옮겨 덩치를 키웠고, 현재 앵콜 공연 중이다. ‘이상한 뮤지컬’이라는 별명대로 이 작품은 기존의 뮤지컬과 다르다.

우선 특별한 이야기 구조가 없다. 신종 돼지독감으로 지구의 여자가 전멸한 후 아름다운 치어걸들이 산다는 전설의 땅 원더랜드를 찾아 떠나는 딕펑스호 선원들의 모험담이지만 그게 그리 중요하진 않다. 스토리 보다는 넘버가 중심이다. 선장(보컬 송용진)·부선장(보컬 김태현)·주방장(베이스 김재흥)·갑판장(기타 김정우)·항해사(건반 김현우)·막내 선원(드럼 박가람)으로 구성된 5명의 선원들은 인터미션 없이 100분 동안신나는 음악을 선사한다. 뮤지컬이라기보다 콘서트에 가깝다. 관객들도 함성으로, 어깨춤으로, 손짓으로 자연스럽게 공연의 흐름을 탄다.

리듬이나 가사는 단순명료해 귀에 쏙쏙 박힌다. 표절의혹을 받는 노래에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거침없이 사회를 풍자하는 넘버도 있다. 인기 연예인의 성대모사도 선보인다.

공연 중 관객은 선장과 부선장의 애정공세를 한꺼번에 받는 ‘제니’가, 갑판 위에 묶여있는 포로가 되기도 한다. 태풍으로 식량을 모두 잃어버린 선원들에게 먹을 것을 약탈 당하기도,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만 이뤄진 ‘욕주문’을 함께 외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관객도 어느새 딕펑스호의 선원이돼 있다.

이 공연의 커튼콜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금요일 밤의 홍대로 안내 하겠다’는 송용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연장은 순식간에 클럽 분위기로 바뀐다. 한바탕 몸을 풀고 나면 속을 풀어주는 ‘함께 욕해드립니다’ 코너가 이어진다. 평소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하지 못했던 욕을 배우들과 관객들이 시원하게 대신해주는 코너다. 공연 공식클럽(club.cyworld.com/showfac)에 욕하고 싶은 대상과 이유, 공연 관람 날짜 등을 적어 미리 신청하면 된다. 고만고만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에 ‘반기’를 든 딕펑스호 선원들의 ‘야심찬’ 이벤트다. 18일까지 대학로 아티스탄홀. 3만, 4만원. ▶문의=02-548-1141

[사진설명]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는 콘서트 같은 뮤지컬이다. 아름다운 치어걸들이 산다는 원더랜드를 찾아떠나는 모험담을 그렸다.

< 김은정 기자 >
[사진제공=쇼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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