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승호 돌려보낸 대신 쌀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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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이 동해상에서 나포한 한국 어선 대승호와 선원 7명(한국인 4명, 중국인 3명)의 송환을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대북지원 확보 포석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선원 송환이란 인도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에 상응한 지원을 남측에 촉구하는 모양새란 것이다.

북한은 최근 신의주 일대 등의 폭우로 큰 수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마침 대한적십자사가 100억원대의 긴급 구호물자와 의약품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북한의 송환 결정은 “정부 차원은 어렵지만 민간단체의 대북 쌀지원은 검토할 수 있다”는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알려진 다음 날 나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수해물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명분이 필요한 상황에서 서둘러 대승호 송환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대남 유화 전술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북한은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태 이후 군사적 위협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대승호 송환은 첫 화해 제스처다.

북한은 지난해 8월 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면담을 계기로 대남 유화 전술로 돌아서면서 당시 억류 중이던 우리 어선 연안호를 한 달 만에 송환했다.

천안함 사태로 한·미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시달려온 북한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6자회담 재개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대북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릴 여건을 만들고 미국 등 관련국들에도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통일부는 공식논평 없이 “다행스러운 일”(핵심 당국자)이란 입장만 밝혔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정부의 5·24 대북 교류·방북 제한 조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선 송환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좋은 신호임에는 틀림없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이르다”며 “남북이 서로 진정성을 타진하는 탐색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송환 결정을 대승호에 타고 있던 3명의 중국 선원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과정에서 드러났듯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선원을 장기억류하기가 부담이었다는 얘기다. 북한은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사흘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떠난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중앙통신을 통해 대승호 나포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 선원만 선별 송환하는 것은 북한이 주장해온 ‘우리 민족끼리’에도 어긋나는 상황이라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후계 논의가 점쳐지는 44년 만의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둔 북한 내 분위기도 석방 결정을 도왔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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