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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협상학의 대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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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강의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비싸다~.”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스쿨 학생이 직접 기획하는 연극 ‘와튼 폴리스(Wharton Follies)’의 대사 중 하나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의 ‘협상(Negotiation)’ 강의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풍자한 것이다. 최근 저서 『 Getting More』의 출간(12월 예정)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다이아몬드 교수를 j가 만났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자를 거쳐 하버드대 법학대학원 을 졸업한 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협상학 교수로 거듭났다. 그는 협상 전문가답게 인터뷰 전부터 필자와 몇 가지 협상을 했다. 원고 마감이 있어 한 시간 내로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전화나 e-메일로 얼마든지 추가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글=홍주연 와튼스쿨 MBA·전 중앙일보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기자를 하다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뭔가요.

“미국 뉴저지의 작은 신문사부터 뉴욕 타임스까지 거치며 2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어요. 1986년에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를 취재해 퓰리처상도 받았고요.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86년)나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의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79년)도 취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로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영역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 왜 협상이었나요.

“제가 잘하는 분야였기 때문이죠. 처음 로스쿨에 들어갈 때는 저도 남들처럼 변호사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협상에 관심이 끌렸어요. 기자를 할 때 첫 만남에서 5초 안에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야 했어요. 그래야 어려운 취재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고민하고 취재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협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겁니다.”

●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로스쿨을 졸업하고 ‘글로벌 스트래티지 그룹(Global Strategy group)’이라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어요. 이론을 만들어 실행도 해보고 몇 번의 실패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협상기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죠. 기업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경영학석사(MBA) 과정에도 진학했고요. 기업과 정부,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협상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알았어요.”

● 협상이란 무엇입니까?

“협상이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interaction)를 말합니다. 시장에서 값을 흥정하거나 자녀에게 숙제를 시키거나 연봉 조건을 협의하는 것, 모두 다 협상이에요. 여기서 대화의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수퍼마켓에서 사야 할 목록을 보며 물건을 사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중 누가 더 효율적이겠어요? 지금 이 대화에서도 나는 원하는 목표가 있지만 당신은 자신의 목적을 모른다면 누가 이길까요?”

● 내 목표를 알면 협상을 잘할 수 있나요.

“내 목표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야 무엇을 주고받을지 분명해져요. 저는 힘이 센 ‘갑(甲)’보다 힘이 약한 ‘을(乙)’이 협상에서 더 유리하다고 주장합니다. ‘을’은 협상 전부터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더 열심히 노력하거든요. ‘갑’은 자신의 힘을 과신해 상대를 화나게 하죠. 예를 들어 미국이 다른 나라를 힘으로 제압해 얻은 것이 무엇인가요? 폭탄 테러와 반미 감정이죠.”

●‘을’이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협상에 들어가면 갑과 을이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세일즈맨이 바이어가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면 더 이상 ‘을’이라고 할 수 없죠. 회사가 직원의 일요 근무를 원하고 있었다고 해보죠. 한 말단사원이 이를 미리 알고 모범적으로 일요일에 나와 일을 합니다. 이 직원은 회사와의 관계에서 계속 힘이 약한 쪽일까요.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하는 학생과 이를 막는 경찰이 있지요. 이 경우 힘이 있는 쪽은 경찰일까요, 아니면 학생인가요. 이처럼 힘의 균형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어요.”

● 상대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 알아내나요.

“미리 상대에게 물어보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제3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당신이 틀린다면 협상 상대는 ‘당신은 바보다’라고 면박을 준 뒤 답을 말해줄지 몰라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보 같은 짓입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협상장소에서 눈치로 이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산입니다. 열심히 뛰는 자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마련이죠.”

● 협상은 ‘윈-윈(win-win)’이 아니라 ‘파이 키우기’라고 했는데요.

“‘윈-윈’이란 말이 오히려 협상의 초점을 흐린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서로 다른 가치(unequal value)’를 교환하라고 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내가 원하는 것과 바꾸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협상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협력을 얻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핵무기 포기가 경제적 지원보다 더 큰 가치가 있고 우크라이나는 그 반대였던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협상의 파이가 커집니다. 생각지 못한 것들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겠죠.”

●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나요.

“부모와 자녀 관계를 볼까요. 부모는 자녀가 제때 숙제하기를,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원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매일 숙제를 하면 토요일마다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말하죠. 서로 다른 가치(숙제와 아이스크림)를 교환하도록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는다면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습니다. 그 뒤 ‘너와 내가 함께 이 규칙을 만들지 않았느냐’며 자녀에게 책임을 지게 하세요.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협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제 학생이 공항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비행기가 결항됐고 항공사 직원은 손님의 항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죠. 이 학생은 시원한 물병을 그 직원에게 건네주며 ‘많이 바쁘시죠. 결항이 당신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다음 비행기에 제가 탈 자리가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음 항공편엔 빈자리가 딱 하나 있었던 거예요. 그 학생은 그 자리를 얻었을 뿐 아니라 좌석도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됐지요.”

● 남한이 북한과 협상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바보 같은 것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데 전쟁 말고 어떤 해결책이 나오겠어요. 그렇다고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것도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상대에 대한 반발만 일으키죠. 전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돈과 식량 지원을, 한국은 북의 핵무기 포기와 정치적 협력을 원한다고 해봅시다. 그럼 첫 단계는 양국 대표가 점심을 같이 먹는 겁니다. 정치 이슈는 피하고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기만 하세요. 이렇게 스무 번쯤 만나며 서로 알게 된 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 교수님 강의가 와튼스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결은 뭔가요.

“협상은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직 협상을 잘하면 한 해에 수만 달러를 더 벌 수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부모님과 대화를 중단했던 학생은 제 강의 덕에 졸업식에 부모님을 초대했답니다. 번번이 데이트에 실패했던 학생은 데이트 신청에 성공했고요. 협상의 기술을 안다는 것이 학생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 같아요.”

● 스스로 유능한 협상가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볼리비아 정부를 대신해 3000명의 농부와 협상한 적이 있어요. 당시 농부들은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 잎을 재배했고, 볼리비아 정부는 이를 막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코카 대신 바나나를 키우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농부를 설득했습니다. 그 다음 에콰도르에서 좋은 품종의 바나나를 들여와 농부에게 재배기술을 가르쳤죠. 2008년 할리우드 작가 파업이 타결되도록 도운 것도 저였고요.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들과의 협상이죠.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협상의 규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유능한 협상가인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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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칵테일 >> 20년간 기자하다 ‘협상’에 관심

협상 부문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를 인터뷰한 사람은 지난달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돌아온 홍주연 팬택계열 해외마케팅 부장이다. 중앙일보 기자로 활약하다 도미해 와튼스쿨을 나온 홍 부장처럼 다이아몬드 교수도 기자 출신이었다. 1980년대에 뉴욕타임스 기자로 활동하며 90여 개의 1면 헤드라인 기사를 쓰고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하버드대 법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았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IBM·아마존·스프린트 등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200개 이상 기업에 컨설팅을 해줬다. 그의 강의는 지난 10년간 와튼스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로 꼽히고 있다.

와튼에서 가장 비싼 강의의 주인공

홍주연 부장은 2008년부터 2년간 와튼스쿨에 다니는 동안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학 강의를 듣지 못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의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학생의 등록금은 같은데 특정 강의가 유독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와튼스쿨의 독특한 수업 경매 시스템 때문이다. 2년 과정의 와튼스쿨 MBA는 한 학년에 800명 이상의 학생이 등록한다. 이에 비해 학생에게 인기 있는 강의는 한정돼 있다. 고심 끝에 학교 측은 경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5000점을 받고 이를 적절히 배분해 과목마다 베팅한다. 한 과목에 많은 점수를 걸면 다른 과목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점수를 걸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과목에 100~500점이면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다.

일부 학생은 이 점수로 ‘투자’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인기 과목을 선점한 뒤 나중에 그 과목을 비싸게 되팔아 자신의 점수를 늘려간다. 경매는 9라운드에 걸쳐 진행된다. 초기에는 일주일 단위로 한 라운드가 진행되지만 뒤로 가면 2~3일 단위로 짧아진다. 일부 학생은 1라운드에 특정 수업을 선점한 뒤 8~9라운드에 본인이 베팅한 점수보다 높은 점수에 되팔아 점수를 늘린다. 수십 명 정도만 들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수업은 1만 점을 넘게 걸어야 할 정도로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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