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과 문화

쿠바서 만난 한인 혁명가

중앙일보

입력 2005.01.28 18:25

업데이트 2005.01.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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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매우 독특한 음악 다큐멘터리. 그는 음악감독 라이 쿠더와 함께 쿠바에 들어가 왕년의 뮤지션들을 찾아낸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딴따라'의 삶을 접고 조용히 보통사람의 삶을 살아가던 늙은 연주가들은 서방에서 찾아온 이들의 방문을 받고 자신들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해변도로에는 파도가 들이쳐 지나가는 낡은 자동차들을 뒤덮는다.

꼭 그걸 봐서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쿠바에 한번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3년 전 소설의 취재를 위해 유카탄 반도에 갔을 때, 쿠바는 100마일도 안 되는 해협 건너편에 있었다. 거기에 가면 체 게바라의 거대한 붉은 초상 아래로 오래된 자동차들이 털털거리며 달리고 시가를 문 카스트로의 사진이 식당마다 걸려 있으리라. 노인들은 삼삼오오 기타를 퉁기고 젊은이들은 가락에 맞춰 차차차나 룸바.살사를 추리라. 그러나 비용과 시간 때문에 결국 그 좁은 해협을 건너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초, 그 쿠바에 드디어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러나 아바나는 파도 치는 해안도로를 빼고는 모든 것이 생각 밖이었다. 도시는 천천히 허물어지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 보수가 되지 않은 낡은 건물들,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들은 보는 이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도시는 금세 어두워졌다. 시가를 문 노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젊은 남자들의 표정은 대체로 어두웠다. 물론 체 게바라의 거대한 초상 같은 것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쿠바라는 나라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떤 분을 우리는 만났다.

그분은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 법대 동창이자 혁명 동지였다. 그분의 할머니는 1905년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멕시코행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애니깽 농장을 거쳐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까지 흘러들어갔고 거기에서 아들을 키웠다. 그 아들은 성장하여 또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그 자식 중의 하나가 우리가 만나러 간 헤로니모 임이라는 분이었다.

그는 부패한 정권에 맞서 대중을 동원하고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고 철로를 폭파하는 사보타주를 조직했다. 아바나 법대의 동창인 카스트로가 쿠바에 상륙해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일 때 아바나 시내에서 그에 호응했고 혁명 후에는 산업부 장관이었던 체 게바라 밑에서 농산물의 수입을 담당하는 차관급 관료로 일했다. 78세의 그는 여전히 정정했고 과거의 사실들을 우렁차고 힘찬 목소리로 조리있게 정리해 진술할 수 있었다. 82년식 러시아산 자동차로 우리 일행을 호텔까지 손수 운전해 데려다 줄 정도로 눈도 밝았다.

우리는 그에게 혁명에 대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젊은 날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남의 나라의 혁명에 휘말리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우리의 질문과는 약간 온도차가 있었다. 비록 소박한 응접실의 한구석에 태극기가 꽂혀 있긴 했지만 그는 진심으로 쿠바라는, 이 가난하고 고립된 섬나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남의 나라'는 결코 아니었던 것. 그러고 보니 그에게는 우리 모두가 가져보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한 나라를 세워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외국의 군대가 진주하는 바람에, 혹은 점령국이 패주하는 통에 갑자기 허둥지둥 뭔가를 만들어야 했던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한 나라를 건설하고 그것을 지금껏 지켜오는데 한 몫을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해변에는 집채만한 파도가 지나가는 차들 위로 내리쳤다. 운전사는 조용히 말했다. "창문을 닫아주세요. 겨울에만 이렇지 다른 철에는 괜찮답니다." 쿠바의 겨울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우리는 손잡이를 돌려 차창을 닫았다.

김영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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