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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하라는 개혁은 안 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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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하지만 최 회장의 다짐과 달리 농협 안팎에서의 비리와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조합장 선거가 있었던 올 상반기에는 돈을 뿌리다 구속된 후보가 적잖았다. 이렇게 당선된 조합장과 직원들은 각종 비리에 휘말려 수사기관을 들락거린다. 부정 대출과 횡령, 곡식 판매대금 부풀리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방 농협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엔 농협중앙회가 전국의 단위농협에 정치인을 후원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말썽이 났다. 후원 대상은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 18명. 의원별로 200명씩 총 3600명으로 인원 할당까지 했다. 후원금을 내고 실적을 보고하라는 지시도 포함됐다.

각 단위농협이 들고 일어났다. 성명을 내고 최 회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등 일이 커졌다. 당황한 중앙회는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개인 아이디어 차원에서 일부 지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확인 결과 모든 지역 농협에 뿌려진 공식 문건이었다. 조직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의미다.

납세자가 정치후원금을 내면 나중에 세액공제로 돌려받는다. 대신 10만원의 한도가 있다. 법인은 정치인 후원이 금지돼 있다. 농협의 시도는 누가 보더라도 이 제도를 이용해 농식품위 의원들에게 정치헌금을 하고, 이를 무기로 로비를 펼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현재 국회 농식품위에는 농협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농협이 정치적 행위나 비리를 저지르지 말고 농민을 위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취지에서 농협을 개혁하는 방안을 담은 법안이다. 이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 사이엔 아직 몇 가지 이견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걸 로비를 통해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게 농협의 의도인 듯하다. 조직적 후원, 그리고 이를 통한 이익 대변, 이런 환경에서 농협을 제대로 개혁하는 법 개정안이 나올 수 있을까.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