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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장난하냐고요? 맞아요, 같이 놀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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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쿠스틱 듀오 ‘십센치(10㎝)’를 들을 때, 진지한 음악 애호가일수록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 것이다. 우선 수상쩍은 이름부터 거슬린다. 십센치? 얼핏 듣기엔 익숙한 비속어가 떠오른다.

두 멤버 권정열(보컬·젬베)과 윤철종(기타·코러스)은 “불경스런 뜻이 아니다”며 손사래 친다. 실은 “둘의 키 차이가 10㎝라 장난 삼아 만든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십센티미터’가 맞다. 한데 발음하기 버거워 그냥 ‘십센치’로 부른단다. 그러면서 이런다. “별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데 재미있죠?” (정열)

완고한 음악 애호가라면 이름보다 더 거슬리는 게 있다. 몇몇 노래에서 “음악으로 장난치나?” 하고 발끈할지 모른다. 예컨대 대표곡 ‘아메리카노’를 듣자.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어떻게 하노 시럽 시럽 시럽/빼고 주세요/…/순대국 먹고 후식으로/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어쿠스틱 인디 듀오 ‘십센치’의 윤철종(기타·코러스·왼쪽)과 권정열(보컬·젬베). 갑자기 치솟은 인기에 대해 “아직 정규앨범도 발표 못 했는데 팬들의 반응이 커서 얼떨떨하다”고 했다. [김태성 기자]

무책임하고 솔직한 노랫말이다. 혹 당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십센치’는 음악을 일종의 놀이로 이해하는 그룹이다. 통통 튀는 노랫말에다 제대로 된 선율을 실어 음악을 갖고 논다. “음악은 열정이 가득한 고품격 취미 생활(정열)”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음악으로 한바탕 놀 수 있는 ‘십센치 랜드’를 열어젖혔다. 음악으로 지어진 그들의 놀이공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중이 부쩍 늘었다. 최근 홍익대 인근에서 가장 ‘핫’한 밴드로 통한다.

“인디 음악에서도 사람들이 새로운 걸 목말라 했어요. 저희가 솔직하게 음악을 풀어내다 보니 대중들이 그걸 독특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철종)

둘 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1982년생 철종과 83년생 정열은 선·후배 사이다. ‘맥박’이란 고등학교 록밴드에서 처음 만났다. 정열은 서울로, 철종은 대구로 대학을 갔지만, 방학 때면 뭉쳐서 밴드 생활을 계속했다. 내친김에 군대도 함께 갔다. 군대 교회에서 ‘세븐 힐즈(Seven Hills·부대 이름인 ‘칠봉부대’에서 따온 이름)’란 밴드를 꾸리고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군대 가서도 음악을 놓기 싫어서 동반 입대했어요. 군대에서 지금 십센치 음악의 얼개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정열)

막상 제대를 하자 둘이 뛰어 놀 공간이 없었다. 해서 무작정 홍대에 좌판을 깔았다. 기타 하나와 젬베(아프리카 전통 북의 일종) 하나를 들고 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생활비가 빠듯한 시절이었는데, 낮에는 놀이공원에서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홍대·인사동 등에서 공연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거리 공연으로만 하루 20만원 수입을 올린 적도 있었어요. 우리만의 어쿠스틱 음악이 통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정열)

이들은 올 4월 첫 EP앨범을 냈다. 집에서 스타킹을 감은 마이크로 녹음했고, 재킷도 손수 만든 100% 자체 제작 앨범이다. 딱 3000장을 찍었는데, 한 달 만에 싹 팔렸다. 인디 밴드치곤 폭발적인 반응이다. 한데, 이런 겸손의 말씀을 늘어놓는다.

“거품 같은 인기가 살짝 빠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죠.”(정열)

십센치의 노래는 대개 “놀다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카페나 집에서 기타 들고 놀다 보면 노랫말도 멜로디도 뚝딱 완성된단다. 이들은 “음악과 가사에 허세가 가득해도 폼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니까, 이들의 ‘십센치 랜드’는 폼 나는 음악 놀이로 빼곡한 곳이다. 그 놀이들은 한번쯤 빠져도 좋을 만큼 매혹적이다. 한데 주의하자. 한번 빠져들면 오래오래 헤어나오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그게 이들의 작전이다.

“오래도록 생각나는 음악을 만들 겁니다. 한번 반짝하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정열)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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