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는 늘 반복 … 집값 하락은 평균 6년간 지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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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한번 닥치는 신용 쓰나미다.”(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 누구도 이런 사태에 대비하진 못했다.”(리처드 펄드 전 리먼브러더스 회장)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크고 작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목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천재지변 같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도 이를 ‘검은 백조’의 출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위기의 패턴’이 있고, 이번 금융위기 전에도 수많은 경고등이 켜졌다고 말한다. 다만 인간의 망각, 그리고 욕망이 이를 가리고 착시를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위기는 반복된다=금융위기는 화폐와 금융시장이 생긴 이래 늘 있었다. 다만 금융회사의 덩치가 커지고 금융상품도 복잡해지면서 그 실패도 거대해졌다. 대표적 유형은 ‘국가부도’와 ‘은행위기’다.

국가부도는 선진국에 이르기 전 신흥국가들이 치러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다. 프랑스도 16~18세기 모두 8차례의 대외채무를 부도냈다. 신흥시장 국가의 경우 외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30~35% 수준을 넘어서면 부도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은행 위기는 아직 졸업한 나라가 없다. 미국에서 발발한 이번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증거다.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위기를 만드는 건 과도한 빚과 차입의 지렛대 효과다. 위기 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금의 대량 유입이 일어났고, 이 돈이 주가와 주택 값을 밀어올렸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1996~2006년 미국의 실질 주택가격지수의 누적상승률은 92%에 달했다. 이전 100년간의 상승률은 27%였다.

위기 전 갖가지 경고 신호가 깜박거리지만 때맞춰 ‘이번엔 다르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 기술이 진보했고, 정책담당자들도 현명해졌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당시 ‘신경제’의 놀라운 생산성을 들어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합리화했다.

이번 금융위기 직전에도 급속한 자금 유입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금융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이를 맞받았다. 결국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총칼보다 훨씬 많은 돈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다. 로고프 교수는 “정부가 금융시장을 완전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능 때문이 아니라 시대 변화와 규제를 뛰어넘으려는 유혹에 시장 참가자들이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번 터지면 오래 간다=금융위기는 경기 침체를 유발하기보다는 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산성 감소와 저성장으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 은행에 위기가 오고 신용경색이 발생해 생산량은 추가로 위축된다.

은행위기는 또 환율·물가 급등, 국내 채무위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잦다. 일반적인 불경기와 달리 대공황이 10년에 걸쳐 지속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은행발 위기 사례를 보면 집 값 하락은 평균 6년 지속됐고, 정점에서 35.5% 떨어졌다. 주가는 평균 3년 반 동안 56% 하락했다. 실업률은 평균 7%포인트 상승하며 약 4년간 지속됐다. 또 대규모 구제금융 투입과 세입 감소 등으로 공공 부채는 금융위기 이후 3년간 평균 86%(실질치) 급증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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