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추가 부양조치 준비돼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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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의 연례 회의에 참석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캐주얼 복장 차림으로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잭슨 AP=뉴시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경기가 더 나빠질 경우 추가 부양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과의 연례회의 자리에서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약하다”면서 “경기 전망이 현저하게 악화되고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면 연준은 추가 경기부양적 정책을 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장 그런 상황이 올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하반기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가다 내년에는 다시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연준이 추가로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정책 옵션을 포괄적으로 거론했다. 그중 가장 채택이 유력한 건 미국 국채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증권을 추가로 사들이는 것이다. 채권과 모기지 증권의 금리를 낮춰 민간 소비를 북돋우기 위한 조치다. 이와 관련해 버냉키 의장은 “연준이 그간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한 것이 기업과 가계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안은 초저금리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은행들이 연준에 지급준비금 이상으로 맡겨 놓은 자금(초과 지준)에 쳐주는 금리를 현재 0.25%에서 0%로 떨어뜨리는 방안도 거론했다. 은행들이 연준에 돈을 쟁여놓는 대신 시중에 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버냉키의 입만 바라보고 있던 시장은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65% 오르며 1만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연준의 방어능력에 시장이 계속 신뢰를 보낼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정책금리는 이미 더 떨어뜨릴 수 없는 수준까지 내려가 비장의 카드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다 보니 이날 거론된 수단들은 모두 전통적 방안들이 아니고,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버냉키 의장도 “문제는 우리가 경제활동을 지지하고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단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수단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가 부작용보다 클 것인지 여부”라며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연준의 경기부양 수단이 많지 않은 상태라 ‘버냉키 풋’의 효과가 지속될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버냉키 풋’은 하락장에서 손실을 줄여주는 풋옵션에서 따온 말로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버냉키 의장이 금리인하 수단을 써 투자자의 손실을 막아준다는 의미로 회자돼 왔다.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는 징후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날 2분기 미국 경제가 1.6% 성장했다고 잠정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나왔던 속보치 2.4%보다 낮아진 것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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