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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졸속 합병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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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물론 2004년부터 추진돼 온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아직도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 비난하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공자위도, 정부도 이를 부담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합병과 관련된 방법론상의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제대로 하려면 정치적인 관문과 경제적인 관문을 모두 통과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금융을 합병이란 방법을 통해 처리할 경우 가장 중요한 정치적 관건은 ‘어떻게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자산 규모 등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은행권은 우리금융을 포함해 KB금융과 신한금융이 이른바 3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KB와 신한은 이미 합병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금융이 3강에도 못 끼는 곳에 오히려 합병이 된다고 하면, 이번 민영화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우리금융 임직원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다. 게다가 가령 합병 상대방이 1인 경영체제와 매우 유사한 경영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라 여겨지면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법률상 공정한 거래라 해도 현실적으론 얼마든지 불만이나 이의 제기가 있을 수 있다.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중소 하청기업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지 않나. 법률상 또는 외관상 공정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모두가 수긍하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금융을 합병으로 처리할 경우 설령 외형적으로, 혹은 법률적으로는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통념상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금융 민영화에서 합병을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려면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익 차원에서 구조조정이나 기존 시장질서의 개편 등 순수한 ‘경제적’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을 잘하는 정부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사전에 합병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국익과 장래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하고 많은 이해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메가뱅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거나, 현재의 3강 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거나,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최소한의 명분과 방향성 제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은행권의 구조조정이나 시장질서 개편과 같은 이슈의 우선순위는 매우 낮은 듯하다. 한마디로 구조조정은 말할 것도 없고, 메가뱅크론 이외에는 시장질서 개편의 필요성도 당장은 없어 보인다.

정부의 규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금융이나 통신산업 등의 경우 경쟁이 유발될 수 있는 시장구조의 조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통신산업의 경우 SK와 KT의 2강 구도로 할 경우 공정경쟁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쟁력 면에서 열세에 있는 LG를 포함한 3강 구도를 정책적으로 유지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 한 사례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미 3강 구도가 형성돼 있으므로 정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조기 민영화라는 북소리에 놀라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라는 나무만 보고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의 안정이라고 하는 숲을 간과하는 실수가 없기를 기대한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