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절실한 북, 신선한 대안 찾는 미 … 카터, 메신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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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한 소녀로부터 손을 들어 경례하는 북한식 환영 인사를 받고 있다.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일행을 맞이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평양에 도착해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월 북한의 천안함 도발로 경색됐던 북·미 관계와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돌파구가 생겨날 가능성 때문이다. 5월 24일 대북 교류·지원 제한조치를 취했던 정부의 대북 정책에 파급 효과가 있을지도 주목거리다.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평양에 장기 억류 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30)의 석방을 위한 인도적 차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카터의 방북 자격도 특사가 아니라 개인 방문(private visit)이란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긴박한 정세를 감안할 때 카터의 방북을 개인 차원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들이다.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카터의 방북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와 관련, "북한 정책에 좌절감을 느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달초 앤매리 슬로터 정책실장에게 고위급 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했고, 신선한 대안들(fresh options)을 점검해 보도록 했다”고 전했다. 카터의 대통령 퇴임 후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6월 1차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았을 때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과 만나 그해 10월의 제네바 북·미 합의의 기초를 마련하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으로서도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를 평양으로 초청해 6자회담 재개 문제에서 ‘완전한 견해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에 천안함 출구전략 마련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우다웨이 대표는 26일 서울을 방문해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미·일도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계산대로 정세가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행정부는 다음 주 초 대북 금융제재 추가조치를 담은 새로운 행정명령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천안함 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 등이 없는 한 남북 관계의 진전은 어렵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이런 입장 속에서도 미국 행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고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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