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기획] 下. 분석 참여 이현우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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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원의 독립성이 강한 미국(하원 기준)에서 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투표하는 비율은 공화당이 90%, 민주당이 86%가량이다. 지난해 6월 구성된 우리 17대 국회의 경우 지금까지 표결 처리된 안건에 대해 당론에 따라 투표한 비율은 열린우리당이 90.8%, 한나라당이 87.9%로 나타났다. 수치를 비교해 보면 한국 의원의 표결 독립성이 미국과 비슷하게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향식 공천이 줄고 선거자금과 정치자금이 투명해진 정치 환경의 변화가 이런 현상의 주원인이다. 공천을 받기 위해 정당 지도부를 무작정 추종하는 행태나 당내 권력과 정치 자금을 대가로 이뤄지던 계파에 따른 일방적 투표 행위 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의원들은 자신의 투표 기록이 유권자에게 공개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하려는 의원이 늘어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원내 표결에서 의원들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현대적 민주주의의 특징인 다원적 의사 표출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후보의 소속 정당을 보고 표를 찍는 경향이 강한 우리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고려할 때 무조건 환영할 수만은 없다. 정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들이 표결에서 당론을 따르지 않는 것을 옳다고 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투표하더라도 정당 간의 조율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의원들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17대 국회는 표결에 이르기 전까지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여전히 서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원 개개인이 소신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정당 간뿐 아니라 같은 당 내에서도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양보와 타협을 통해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타협을 마치 야합이나 비겁한 것으로 생각하고 초지일관하는 것만이 순결하다고 여기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현우 경희사이버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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