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오리지널은 고급 라이선스는'글쎄' 고정관념 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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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명품 선호도가 높은 한국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의 위력은 막강하다. 상품의 질은 물론 품위, 권위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와 같다. 실제로 명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고 구매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소비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요즘 세상에 명품은 있을 수 있으나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다. 패션 명품도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OEM)'에 의해 생산지가 다변화돼 있어, 출신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오리지널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브랜드 파워라는 말이 합당하다.

개념의 혼란으로 잘못 고착된 말 가운데 하나가 '순수예술'이다. 흔히 '대중예술'의 상대어로 쓰이면서 연극.음악.무용 등 상업적인 흡입력이 약한 장르를 지칭했다. 이 장르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고 벌어야 하는데 '순수' 앞에서 이런 생각은 불결한 일처럼 보였다.

뮤지컬을 가늠하는 말 가운데 '오리지널 뮤지컬'이라는 게 있다. 언제부터 누가 이 말을 썼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장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외국인이 출연하는 수입 뮤지컬'을 이른다. 같은 외국산이라고 하더라도 라이선스(제작권)를 사와 국내 제작한 한국 배우 출연의 이른바 '라이센스 뮤지컬'(이 또한 한국식 조어다)과 구별돼서 쓰인다. 뉘앙스를 비교하면 '오리지널은 고급, 라이센스는 안(?)고급'이라는 가치 판단이 배여 있다.

과연 이게 옳은 구분인가. 이 둘 사이에 '가치 문제'를 개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오리지널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할 때의 본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 오리지낼러티는 그 당시로 족하다. 그 이후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나라, 혹은 다른 프로덕션이 만든 뮤지컬은 패션 명품처럼 브랜드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브랜드는 '원청업체(원제작사)'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지만 말이다.

공연계에서 '오리지널'이 폼 잡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대주의 때문이다. 일본에서 오리지널 뮤지컬은 창작 뮤지컬을 일컫는다. 주체성이 읽힌다. 병이 도지기 전에 우리 공연계도 용어(개념)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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