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에 찍힌 국가정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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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가정보원이 몰래 카메라의 대상이 됐다? 6㎜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감독 홍형숙)를 놓고 국가정보원과 제작진 사이 이같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경계도시는 동·서독 분단 시절 베를린의 별칭이다. 영화는 재독(在獨)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다루고 있다. 지난 11월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됐으며 이달 21, 25일 서울독립영화제 2002에서 두차례 상영됐다.

그런데 서울독립영화제 상영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8월 국정원 요원 두명이 제작진을 만나 "송교수는 북한측 고위급 공작원이 확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 4분 가량 노출됐던 것.

홍감독은 "지난 24일 밤 국정원 측이 초상권 침해 등을 들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연락해 왔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몰래 카메라는 국가 권력에 대한 개인(제작진)의 방어 수단이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증거 자료였다"고 전제,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번 부산영화제에선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초상권 침해 여부다. 상대편인 국정원 요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그들의 얼굴을 대중 매체인 영화에 노출했다면 이는 위법일 가능성이 크다. 홍감독은 "요원들의 뒷모습만 나온다. 자문 변호사와 논의한 결과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상영했다"고 주장했다.

판단은 영화 편집 초기 단계에 개입해 제작을 중단시키려고 한 국정원의 행위와 '몰카' 장면을 상영한 제작자의 행위 중 어느 편이 문제인지 골라내야 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아무래도 긴 공방 끝에나 결론날 것 같은 조짐이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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