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시대 부동산 시장 어디로]투자 위축되며 거품 빠질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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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개혁 성향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부동산시장엔 적잖은 변화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盧정권 출범 이후 부동산시장 전망·행정수도 이전방침에 따른 시장 판도 변화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지난 20일 당선 기자회견을 통해 "서민생활 안정에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두되 특히 집값 잡기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盧당선자의 경제관이 성장보다는 분배에 쏠려 있고, 투기억제라는 공약이 나온 만큼 부동산 시장이 일시적인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盧당선자가 현재 일부 지역 주택값이 거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데다 단기적으론 공급확대보다 가수요 차단에 주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점을 봐도 그렇다.

게다가 행정 수도의 충청권 이전이라는 메가톤급 공약이 실천으로 옮겨질 경우 수도권과 충청권의 주택시장이 심하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투자 위축 불가피=盧당선자는 대형주택에 대한 세제를 현실화하고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전·월세 가격까지 통제하겠다며 부의 분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용현 서울컨설턴트 대표는 "盧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단기적으로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며 "그러나 집값의 하향 안정세가 당분간 이어진다면 거품이 빠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세중코리아 한광호 실장은 "盧당선자가 조세의 정의와 형평성을 추구하고 있어 종전의 양도세·재산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형주택을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크게 꺾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겨울방학 성수기를 맞아서도 집값은 미세한 움직임만 있을 뿐 가격 상승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르하우징 임종근 대표는 "공급확대를 내세운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은 지역별 수급불균형 해소와 투기수요를 억제하는데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시장은 일단 침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럴 경우 특히 서울 강남권 집값이 탄력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현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를 당장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경제연구소 곽영훈 거시경제팀장은 "시중에 여윳돈이 많이 풀려 있고,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금리를 대폭 인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따라서 금리와 역비례 관계인 부동산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일부 개발예정지를 중심으로 시중의 부동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현재의 투기억제책은 계속될 것으로 곽팀장은 내다봤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초저금리 등으로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 부동산값을 어떻게 연착륙시키느냐가 盧당선자의 과제"라며 "자금이 기업·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체들"기대半 우려半"=盧당선자의 경제관 외에 민주당의 경제정책 색깔을 감안하면 서민 주택이나 공공임대 주택이 많이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盧당선자는 부동산 부문 공약을 통해 임대주택을 매년 10만∼20만가구 짓는 등 서민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공약에서 밝혔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 중 과중한 세금부과 등 규제가 심한 부문은 어느 정도 완화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규제가 강하면 상승기에는 효과가 있지만 가격 안정기에는 수요를 억제해 침체시키기 때문이다.

경실련 위평량 경제정책팀장은 "앞으로 5년간 서민경제의 최우선 순위는 집값을 비롯한 물가안정에 둬야 할 것"이라며 "또 신도시건설이나 행정수도 이전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도시와 행정수도건설 등에 대한 건설특수를 누릴 수 있지만 지나친 투기억제책으로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H건설의 한 임원은 "중대형 주택은 시장원리에 맡기고 소형·임대주택은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盧당선자의 공약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한다"며 "주택시장이 내수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폈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국주택협회 이중근 회장은 "집값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해선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며 "서민들의 내집마련과 주택건설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예측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갑·김용석 기자

w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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